
강물은 자신을 밟고 길을 낸다/ 민병도 수필집/ 목언예원 펴냄
"'요즈음 얼마나 힘이 드느냐"고 굳이 묻지는 않겠다. 하지만 지금 너는 또 무엇을 준비하느라 골몰하는지 궁금하구나. 아버지는 혹여 태산이라도 옮길 것 같던 너의 인생 도전 1막이 실패로 끝났다고 패배의식에 빠지지나 않을까 잠시 걱정을 했었단다. (중략) 바라건대, 너무 작은 것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마라. 가만히 보면 바람에 흔들리지 않은 꽃이 없고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들풀이라도 혹한의 눈보라를 이겨내지 않고 향긋한 봄을 맞는 예는 없단다."
시조시인이자 화가인 저자는 이 글을 통해 아버지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구구절절의 부정(父情)을 한없이 토해내고 있다. 이 수필의 제목은 이 책의 이름과 같다.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위해 자연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지 어언 20여 년 째.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의 삶을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 시간이면 노자의 '도법자연'(道法自然)의 발치에는 도달할 줄 알았었는데, 저자는 아직도 비가 오면 우산부터 챙기고 해가 지면 전등부터 밝히는 범인(凡人)의 삶을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이 글들을 쓰게 한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미루어 짐작해 본다.
또 전체 51편의 수필 중 '해인삼매'에서는 일 년이라는 기다림 끝에 봄보다 먼저 찾아온 기별에 대한 기쁨을 노래했다가 사흘도 못 가서 차가운 바람과 눈발에 견디지 못하고 얼어서 망가진 운룡매에 대한 회고도 있다.
이렇게 말이다. '분명 함부로 부려본 치기는 아닐 거야. 서둘러 바람의 세기를 재고 햇살의 두께를 일고 기다림의 시간을 계산한 끝에 온몸의 기운을 다 뻗쳐서 만난 세상이 아니던가.' 그래서 저자는 "그래, 생존에 대한 열정이 맞을 거야. 그 순수한 열정과 치열한 준비와 용기 있는 실천 앞에 겸허해지는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저자는 시조시인답게 한 떨기 매화의 피고 짐을 통해 인생의 깊은 이치의 깨달음을 토로한 것이다.
"나는 과연 나의 삶을 저토록 치열하게 살아본 적이 있었던가?" 이 수필집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울리는 마음의 메아리이다. 275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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