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거닐었을 아테네 아고라의 판아테나이카 도로를 걷다 보면 귀족회의가 열리던 아레오파고스 바위에 이른다. 여기서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신들의 공간 아크로폴리스에 아테네의 상징 파르테논 신전이 반겨 준다. 신전 동쪽 벼랑 아래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극장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B.C. 534년 극작가 테스피스의 연극이 막을 올렸다. 인류사 연극의 출발이다. 아테네 연극은 B.C. 490년 마라톤 전투, B.C. 480년 살라미스 해전 승리 뒤,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숙적 페르시아를 두 번 물리친 군사력에다 그리스 문명권 국가들의 델로스동맹 기금을 유용한 경제력, 각지에서 몰려든 인재들이 B.C. 5세기 아테네 문화 황금기를 일군 덕분이다. 국가가 매년 두 번 개최한 연극 경연 축제도 촉매였다.

디오니시아(City Dionysia)로 불린 봄철 대축제는 비극 위주, 이보다 3개월여 앞선 겨울철 레나이아(Lenaia) 축제는 희극 작품 경연 뒤, 당선작을 무대에 올렸다. B.C. 5세기 아테네 희극의 특징은 정치 풍자다. 무능, 오만하면서도 위선 가득한 정치인과 세태를 고발한 최고의 희극 작가로 아리스토파네스(B.C. 446~385)가 역사에 길이 남는다. 인간 본성의 심연을 파헤친 3대 비극 작가 아에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에 비견될 만큼 인기를 얻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약관 20세이던 B.C. 427년 디오니시아에서 '연회하는 사람들'로 2등, 이듬해 '바빌로니아 사람들'로 1등을 거머쥔다. 이어 레나이아 희극제에서 B.C. 425년 '아카르나이 사람들', B.C. 424년 '기사들'로 연거푸 1등에 오른다. 우리가 이 두 작품에 주목하는 이유는 아테네 최고 권력기구 스트라테고이(장군단, 10명의 장군 스트라테고스로 구성)의 핵심 정치인 클레온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대목은 아테네 정계 최고 실력자 클레온이 자신을 풍자 비판한 아리스토파네스에 그 어떤 권력도 휘두르지 않은 점이다. 권력자를 비판하는 작품이 국가 주관 연극제의 1등상을 탈 수 있고, 또 그런 작품과 작가에 대해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던 아테네 민주주의. 표현의 자유가 살아 숨 쉬던 아테네 직접민주주의의 성숙한 면모가 2500년 흘러 한국 사회에 어떻게 투영될까?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을 비판하는 30대 젊은이를 모욕죄로 고소했다 접었다. 방송에서 정치 얘기 한 마디도 않고, SNS에 몇 줄 정부를 비판한 JK 김동욱은 프로그램에서 쫓겨나 생계를 잃었다. 방송에서 민주당 찬가를 외치는 김어준은 4년 넘게 서울 시민 혈세 20여억 원을 주머니에 챙기는 중이다. 정치 비판이 온전할 수 없고,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오죽하면 한 대학생 단체가 "표현의 자유를 원해서 죄송하다"는 대자보를 전국 대학가에 붙였을까.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9일 '포털 뉴스 알고리즘 공개법'을 꺼내 들었다. "전두환 정권 보도 지침을 떠올린다"는 비판처럼 포털 뉴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겠다는 의도가 비친다. "쿼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묻던 베드로는 예수님 말씀에 깨달음을 얻고 순교한 뒤, 성인 반열에 올랐다. "대한민국 표현의 자유는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이들은 대접은커녕 핍박에 시달리는 나라, 민주국가라면 한 번도 경험해서는 안 되는 나라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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