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일영 선생님(1935~2019)을 처음 뵌 것은 70년대 말, 그 무렵 선생님은 도교육청 국어과 장학사로 계셨고, 나는 초임 국어교사로 경북 어느 산골 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때 그 학교로 장학지도를 오신 선생님은 지도의 결과로 우수교사 한두 명을 발굴해 가는데, 떠나시고 난 뒤 교감선생님은 내 이름을 적어갔다고 귀띔해 주었다.
이듬해 근무 만기가 되어 경주로 내신을 내었더니, 그 지역 명문 여고로 발령이 났다. 선생님께서 좋은 학교로 보내주신 거로 알고 열심히 근무하고 있는데, 이태 지난 초봄에 갑자기 구미의 어느 고등학교로 발령이 났다. 당시 교육부 영재교육 연구를 수행 중인 그 학교의 운영 책임을 지고 오시면서 나를 그리로 부르신 것이다. 부르신 뜻을 따라 성실히 근무하려고 애썼다.

그리하여 반세기가 다 되어가는 세월을 선생님과 인연을 함께했다. 처음에는 교직을 연으로 한 선배요 상사 선생님으로 뵙게 되었지만, 이십여 년 전부터는 문학의 길을 함께 걷는 또 하나의 연을 맺게 되었다. 어떤 인연으로서든 선생님은 늘 이해와 사랑으로 안아주려 하셨다. 그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여러 교육전문직을 거쳐 굴지의 명문교에서 퇴임하실 때까지 교육계에서 찬연한 업적을 쌓으시고, 네 권의 수필집과 한 권의 장편소설을 펴내시며,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등 여러 문학상을 받으시기도 했다.
선생님과 제가 고향이 같은 선산이라는 인연으로 선산을 근거로 한 '선주문학회' 회원으로 함께 활동했다. 2000년 승진과 동시에 신비의 섬 울릉도로 발령받아 근무하게 되면서 섬의 신비에 취하여 많은 글을 썼다. 그 사실을 안 '선주문학회'에서 내 글의 특집을 마련해 주었는데, 선생님은 내 글을 두고 "그는 조그만 섬과 바다를 그의 인생 항로로 보고 ……더 나아가 삶의 의미로 '바다 건너기'를 정의했으니 얼마나 넓고 큰 예술혼이며, 창조적 마음가짐인가"라고 격려해 주셨다.
선생님이 퇴임한 지 강산이 변하는 세월이 흐를 무렵, 나도 퇴임을 앞두고 구미 어느 고등학교에 마지막 자리를 잡았다. 그 연유로 잠시 '선주문학회' 운영 책임을 맡아 동인지에 선생님의 수필 세계를 조명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한 후배 수필가가 "견일영 같은 수필가를 회원으로 가진 선주문학회가 행운이고, ……수필을 공부하는 처지에서 훌륭한 선배를 가졌음을 다행 중의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선생님의 수필 세계를 높이 기렸다.
세상의 어떤 궂은일이라도 선생님의 말씀을 거쳐 나오면 유머가 되고 웃음이 될 정도로 낙천적이셨다. 그런 선생님도 세월과 함께 오는 지병은 어찌할 수 없어 십수 년부터 병마와 더불어 지내면서도 "산다는 것보다 더 위대한 철학이 어디 있겠는가"라시며 늘 밝은 표정으로 지내셨다. 떠나시기 한 달 전까지도 정정한 모습이셨다.
선생님은 나에게 삶과 문학의 정 깊은 멘토셨다. 이제 선생님의 뒤를 따를 날이 그리 낙낙지 않다. 다시 뵙고 여느 때처럼 담소 화락을 함께하며, 선생님의 그 웃음, 그 정 다시 꽃피울 날을 그려 본다. 다시 뵐 그 날까지 부디 평안하소서. 그리운 견일영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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