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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너저분한 변명 하지 마라”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패배가 기정사실로 굳어 가던 1945년 3월 일본 전쟁 지도부인 대본영은 연합군의 본토 상륙에 대비한 '결호(決號) 작전'을 수립했다. 본토 6곳과 본토 밖 1곳(제주)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는 것으로, 본토에서 연합군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많이 죽이는 게 목적이었다.

그 방안에는 남아 있는 군사력을 최대한 긁어모아 자살 공격을 하는 것과 함께 민간인 2천800만 명을 국민의용대로 조직해 전투에 투입하는 계획도 포함됐다. 문제는 이들에게 지급될 무기였다. 책걸상을 잘라낸 각목에 쇠파이프를 고정시킨 조악한 총, 깡통에 화약과 쇳조각을 넣어 만든 깡통 폭탄, 일본식 대나무 활, 일본도, 식칼, 낫, 소방용 갈고리, 죽창 등이 고작이었다.

이 중 죽창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일본 육군 나아가 군부 전체의 비과학성과 정신론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연유는 일본 육군 장성 아라키 사다오(荒木貞夫)의 '죽창 300만 자루'론에 있다. 1933년 10월 당시 육군대신이던 아라키는 외국인 기자들과 인터뷰에서 "죽창 300만 자루가 있으면 열강이 공포에 떨 것"이라고 했는데 본토 결전 상황이 되자 아라키의 주장처럼 상대를 공포에 떨게 할지 여부와 별개로 실제 무기로 등장했다.

일본 출판사 다카라지마가 아사히(朝日), 요미우리(讀賣),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등 3개 신문 11일 자 2개 면에 걸쳐 일본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비판하는 광고를 실었다. 광고는 태평양전쟁 당시 죽창을 들고 군사훈련을 받는 소녀들 사진을 배경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 이미지가 한가운데 놓여 있는 이미지가 담겨 있고, 왼쪽 상단에 "백신도 없다. 약도 없다. 죽창으로 싸우란 말이냐. 이대론 정치에 죽임을 당한다"고 적혀 있다.

그 메시지는 현재 코로나19와 관련한 일본의 상황은 연합군에 죽창으로 맞서려 한 태평양전쟁 말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백신 접종률은 OECD 국가 중 일본과 함께 최하위권이다. 정부는 오는 11월 집단면역을 달성할 것이라고 큰소리친다. 그러나 백신 확보 상황을 보면 그럴 것 같지 않다.

광고에 실린 문구 중 이런 게 있다. "너저분한 변명 하지 마라." 지금 문재인 정권이 들어야 할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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