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겨울방학을 앞둔 2학기 말이 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대구 비수성구에서 수성구로, 수성구 내에서도 학군이 좋은 특정 동네로 '입성'을 해야 하느냐는 고민이 본격적으로 들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자녀의 친구들, 혹은 주변 학부모들이 다른 동네로 옮겨 가는 경우를 곁에서 지켜보면 마음은 더욱 조급해진다.
학군이 좋고 사람들이 몰리는 '좋은 동네'들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대단지 신축 아파트가 즐비하거나, 구축 아파트가 있더라도 개발을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라붙는 업자들이 많다. 젊은 층이 몰리면서 자연스럽게 인근에는 학원, 병원, 체육시설 등을 비롯한 편의시설들이 하나둘 들어선다. 이런 곳에서 공공임대주택이나 대규모 낡은 주택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대구의 일부 동네들은 사람들이 떠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악조건을 갖추고 있다. 열악한 입지에도 '수익성이 없다' '수요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대중교통 혜택에서 늘 소외된다. 연로한 주민들이 복지관으로 향하는 길이 경사로뿐이어도, 가로등이 부족해 위험에 자주 노출되는데도 환경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공공임대주택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때는 1980년대다. 대구 주택통계연감에 따르면 현재 대구에 30년 가까이 된 노후화된 공공임대주택은 10여 곳이 있다. 주택 면적이 좁은 데다 주변 환경이 낙후돼 이곳의 젊은 인구는 갈수록 줄어든다. 사망자 수나 노인 인구, 장애인 등 취약계층 비중은 인접 동네보다 월등히 높은 편이다.
시민들은 이런 동네가 자신들과 지리적으로는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데 새삼 놀란다. 이런 곳들은 번화가나 고가의 브랜드 아파트가 즐비한 동네에서 도로 하나만 건너면 마치 다른 세상처럼 나타난다. 공간적으로는 분명 같은 도시에 있지만 생활 여건은 완전히 다른 거대한 섬처럼 변한 것이다.
복지 전문가들은 애초 우리나라 공공임대주택이 지닌 태생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과거 정부가 물량 공급에만 치중한 나머지 취약계층을 공공임대주택으로 '밀어 넣기'에 급급했다는 것이다. 취약계층의 근로 능력이나 가구 구성, 이들의 다른 요구는 듣지 않은 채 주택 공급에만 혈안이 돼 왔다고 비판한다.
최근 취약계층을 위한 주거 지원책이 단순 주택 공급 차원을 넘어 도시재생과의 연계성까지 강조되는 것은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특정 지역에 빈곤층이 밀집한 대규모 공동주택 방식의 주거 지원책이 더는 능사가 아니라는 데도 동의한다. 취약계층이란 사실이 사는 곳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사회 곳곳에 주거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독주택 같은 곳에도 이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주거 급여를 제공하는 방식의 주거 지원책이 강조되기도 한다.
공공에서는 그간 문제 제기가 없었고, 주민들의 요구가 없었다는 이유로 낙후된 환경 개선에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이 동네 주민들은 일평생 자신들의 권리 주장에 익숙하지 않은 채 살아온 사람들이다. 주민들의 항의가 없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과연 공적인 차원에서 '낙후된 곳'이라는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지금과 같은 소극적 행정이 계속된다면 낙후된 동네의 슬럼화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대구 한 취약 지역 복지관 관계자의 경고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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