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내조' 등 각종 의혹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기어이 임혜숙 씨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 임명하고 말았다. 후보자들 중 낙마 1순위로 꼽혔던 터라 그의 임명은 이례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졌다.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여성할당제를 지키기 위한 정권의 의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 정권의 집권 초기만 해도 장관 중 여성의 비중이 30%로 OECD 평균에 근접한 바 있다. 그러던 것이 집권 후반으로 갈수록 그 비중이 떨어져 성평등을 약속한 대통령의 공약이 무색해진 상황. 그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것일까? 공직윤리의 기준에 현격히 미달하는 인물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장관 자리에 앉혔다.
최악의 수다. 임혜숙 후보자와 관련해 제기된 의혹은 모두 14개라고 한다. 가족 동반 출장이 13회, 제자 논문에 남편 이름 올리기가 18번, 그 밖에도 NST 채용 절차 위반, 다운 계약서 작성 등 거의 비리 백화점 수준이다. '여자 조국'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 그가 한 나라의 장관이 됐다.
왜 그랬을까? 임명권자의 입장은 "성공한 '여성 롤 모델'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임 후보자를 지명했다"는 것이다. 취지는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그 방식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공직 후보의 자격에 미달한 이가 '성공한 여성 롤 모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조치는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일단 성평등 정책에 찬성하는 측에선 '이게 과연 성평등'인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여성할당제의 취지는, 잠재적 능력은 있으나 구조적으로 차별당해 온 여성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 그저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이유에서 자격이 안 되는 이를 구제하는 것은 제도의 취지를 근본적으로 벗어난 것이다.
다른 한편, 성평등 정책에 반대하는 안티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이 조치에서 여성할당제를 폐지해야 할 이유를 본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 백래시의 물결에 몇몇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편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준석 전 최고위원과 같은 이는 이 사태가 '할당제 폐지'라는 자신의 소신을 입증해 준다고 믿는다.
윤희숙 국회의원도 숟가락을 얹었다. "반듯하고 능력 있는 여성을 열심히 찾는 게 아니라, 능력과 자질이 모자라도 여자라 상관없다는 게 문재인식 페미니즘이다." 이 발언은 적어도 의미론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의 말대로 '반듯하고 능력 있는 여성을 열심히 찾는' 것이 여성할당제의 취지를 살리는 길이다.
문제는 화용론, 즉 이 발언이 발화되는 맥락에 있다. 사실 윤희숙 의원과 이준석 전 최고 사이에는 이 문제에 관해 넘을 수 없는 인식의 간극이 존재한다. 즉, 윤희숙 의원은 적어도 여성할당제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반면 이준석 전 최고는 여성할당제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본다. 두 견해는 양립할 수 없다.
윤희숙 의원이 진정으로 여성할당제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일단 이준석의 안티 페미 선동에 제동부터 걸었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이제까지 이준석의 안티 페미 선동은 묵인하고 용인해 왔다. 이런 맥락에서 행해진 발언은 '문재인식 페미니즘'이 아니라 페미니즘 자체에 대한 공격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그의 발언 중에서 '문재인식 페미니즘'이란 표현은 임혜숙 장관의 임명이 일회적인 사건이 아님을 함축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발언은 할당제에 맞춰 능력 없는 세 여성 장관을 기용하는 바람에 국정이 엉망이 됐다고 한 이준석의 혐오 발언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저 덜 무식해서 덜 용감한 것뿐이다.
김종인 비대위 아래서 성평등 정책을 강화하는 신정강정책을 채택한 바 있건만, 20대 남성의 몰표에 고무됐는지 최근 국민의힘 내에서는 외려 안티 페미니즘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재보선 표심의 완벽한 오독에 기초한 백래시는 보수의 발목을 잡는 새로운 덫이 될 것이다. 이 경향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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