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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지금 업데이트 하시겠습니까

이수영 책방
이수영 책방 '하고' 대표

모바일뱅킹을 이용한 후 은행에 갈 일이 거의 없었는데 보안카드 유효기간이 만료되어 오랜만에 은행에 갔다. 얼마 전까지 있었던 지점은 그새 사라졌기에 결국 다른 동네까지 찾아갔다. 예전처럼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고 있었더니 직원이 어떤 업무인지 물어본다. 목적을 설명하자 직원은 밖에 있는 기계에서 할 수 있는 업무라고 했다. 카드 발급도 기계로 된다고? 기계 앞에서 한참 버벅거렸다. 어쩔 수 없이 직원이 나와 발급을 도와주었고 기계에서 쏙 하고 나온 보안카드를 받아들고 은행을 나서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미안한데 고맙고, 신기한데 어색한. 이전에도 키오스크 방식은 생활 곳곳에 있었지만 코로나 이후 비대면 시스템은 우리가 미처 예상치 못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필자의 하루 일상만 되돌아보아도 누군가를 '직접' 만나지 않아도 해결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다. 밤 12시 전, 새벽배송 앱으로 장을 보면 바로 몇 시간 뒤 문 앞에 식재료들이 도착한다. 새벽배송을 이용한 이후 마트 가는 일이 크게 줄었다. 아이들은 ZOOM으로 비대면 수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화상채팅을 하며 게임을 한다. 놀이터에서 노는 것보다 더 익숙한 모습이다. 쉬는 날에는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OTT 서비스를 통해 재미있는 영화나 드라마 시리즈를 볼 수 있고 배가 고프면 배달 앱을 통해 터치 몇 번이면 맛집의 먹거리들이 집으로 찾아온다.

집 밖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택시를 이용할 때 앱으로 출발지점과 도착지점을 설정하고 호출을 누르면 내가 있는 곳으로 택시가 온다. 목적지를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미리 등록한 카드로 결제가 되기에 택시 기사와 인사 외에는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그리고 키오스크 주문방식도 이제는 패스트푸드점 뿐만 아니라 작은 식당, 카페에서도 볼 수 있으며 결제방식 역시 달라져 신용카드만큼이나 모바일 간편결제를 많이 이용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국내 최대 커피전문점인 스타벅스는 2018년부터 현금결제를 받지 않는 매장을 점점 확대하고 있다. 덴마크처럼 현금이 없는(cash-free) 사회로 가는 것도 시간 문제인듯하다.

이렇게만 보면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비대면, 비접촉 사회에 잘 적응하는 듯 보이지만 종종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겨우 트렌드를 따라가나 싶으면 새로운 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한다. 며칠 전 길에서 공유 킥보드를 타보려다 포기했고, 음식점 입구에서는 열 체크를 위해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가 QR코드 찍고 들어가는 뒷사람을 멋쩍게 바라보기도 했다. 일터에서도 비대면으로 온라인 모임을 해야 하는데 아직 화면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하기만 하다. 직접 만나는 것보다도 더 부끄러운 건 왜일까.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속도는 더 빨라졌지만 이를 따라가는 인간의 업데이트 속도는 천차만별이다. 컴퓨터도 휴대폰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 컴퓨터는 클릭만 하면 자동으로 업데이트가 되지만 비대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인간의 업데이트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기존 정보를 최신 정보로 바꾼다'는 업데이트의 정의에 비춰 본다면 우리는 최신 정보를 꾸준히 배워야한다. 평생 배우는 것도 쉽지 않지만 아뿔싸! 인간에게는 더 큰 복병이 있었으니 정든 기존 정보를 버리는 것이 배우는 것보다 더 힘들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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