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서구 상인3동
▷반려견이 동반자, 비둘기아파트 주민의 생활
14일 오후 대구 달서구 대덕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상인3동 비둘기아파트. 108동 단지 내 정자에 말없이 둘러앉은 주민들 사이로 강아지 두 마리도 주인 옆에 자리를 잡는다. 주민 박대희(가명·68) 씨는 말티즈 '태양이'를 키운다. 박 씨는 상인1동에 작은 방을 하나 얻어 살다 2019년 비둘기아파트로 들어왔다. 곁에 남은 가족이 없는 박 씨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유일한 친구는 반려견이었다. 외로움을 느낄 때, '태양이'가 옆에서 재롱을 부렸다. 박 씨는 반려견 미용의 달인이 됐다.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하는 탓에 태양이를 매번 미용실에 데려가기는 무리다. 하지만 이번엔 털을 바짝 깎아버려 태양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1993년 지은 영구임대아파트인 비둘기아파트는 반려견 천국이다.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인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들이 반려견을 키우는 것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사료 값도 만만치 않은 데다 각종 예방 접종에 돈이 상당히 들어간다는 이유에서다. 그 만한 이유가 있었다.
오랜 세월 쇠퇴를 겪으면서 가족과 이웃이 하나 둘 떠나고 홀로 남게 된 외로운 노령자나 자활이 어려운 주민들은 반려견을 한 마리씩 데려오기 시작했다. 비록 돈을 더 쓰더라도 쓸쓸한 생활을 함께 버틸 동반자가 필요했다. 돈 걱정보다 외로움이 더 싫었던 것이다.
비둘기아파트 주민들의 상황은 무엇보다 반려견 이름에서 잘 나타났다. 현실은 녹록치 못하지만 반려견과 함께 희망 가득한 생활을 꿈꿔 보는 것이다. 박 씨의 반려견이 태양이가 된 이유도 어두운 방에서 혼자 살아가는 현실에서 반려견이 태양처럼 빛나는 존재가 돼줬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상인종합사회복지관 관계자는 "아파트단지에서 유모차에 반려견을 태우고 다니거나 심지어 업고 다니기도 한다. 아이인가 싶어 보면 개가 떡하니 앉아 있더라"며 "그들에겐 동물이 자식을 대신한다. 돈보다 동물로부터 받는 정서적 안정감이 더 중요한 것이다"고 했다.
▷위험 가구 찾아내는 반찬집 아주머니
비둘기아파트 단지 내 종합사회복지관은 올해 중점사업으로 '40·50대 고독사 방지'에 맞췄다.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 정부의 복지시스템에서 관리가 가능하지만 40·50대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기 때문이다.
이들 대부분은 집 안에서 술만 마시고 지내는 '은둔형 외톨이 가구'.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생활하는 탓에 그들의 상황을 알기 어렵다. 게다가 은둔형 외톨이 가구들은 고독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상인3동 상원시장에서 반찬가게를 하는 김경자(61) 씨는 복지사 대신 위험 가구들을 여럿 발굴했다. 김 씨는 손님의 옷차림, 고르는 반찬 종류까지 살펴보는 '매의 눈'을 가졌다.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장아찌만 사들고 가는 손님은 특히 은둔형 외톨이일 가능성이 높다는 등 나름대로 특징을 정리하는 노하우까지 지녔다.
김 씨는 "반찬이 3천원만 넘어가도 벌벌 떨던 분이 있었다. 돈에 민감한 걸 보고 생활이 힘들다는 것을 한 번에 파악했다. 또 평소 부끄러움을 많이 타다 술만 마시면 허세를 부리는 아저씨도 있었다. 얼굴은 상처투성이인데다 매번 가격만 물어봤다. 위험 가구이겠거니 싶어 안부를 묻는 척 동, 호수를 파악해 복지사에게 알려줬다"고 했다.
이런 경자 씨의 발굴 능력은 상인종합사회복지관 복지사에게 큰 도움이 됐다. 주민들이 도움 요청을 하지 않는 이상 접근이 어려운 복지사에게는 경자 씨와 같은 민간의 도움이 반갑기만 하다.

◆달서구 월성 2동
▷월성주공, 어느새 '슬럼 아파트'
월성주공 2단지에 사는 정금복(가명·84) 할머니가 손가락을 하늘 위로 뻗었다. 손가락 끝은 얼마 전 화단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줍다가 머리 위로 스티로폼 접시가 떨어진 곳을 가르키고 있었다. "좀 더 무거운 물건이었다면…" 하던 정 할머니는 소름이 돋는다며 자리를 떴다.
이곳 주민들은 '하늘에서 쓰레기가 내린다'고 했다. 아파트단지에서 창문 밖으로 쓰레기를 버리는 주민들이 많은 탓이다. 206동 관리소장은 쓰레기에 머리를 맞아 병원으로 실려가기까지 했다.
한 경비원은 "창문 밖으로 쓰레기를 던지지 마라고 방송을 해도 소용없다. 음식물 쓰레기나 배달을 시키고 남은 접시 등을 창문 밖으로 던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주민 의식이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쇠퇴한 아파트 만큼 주변 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월성주공은 가로등이 부족해 밤이 되면 암흑천지가 된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 휠체어를 몰다 벽에 부딪힌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단지 내 상가엔 엘리베이터가 지하 1층과 지상 1층까지만 운영된다. 주민 대다수가 이용하는 병원, 이용소, 카페 등이 모두 2층에 있어 몸이 불편한 노인들은 42개의 계단을 올라가지 못해 상가 밑에서 하염없이 바라만 봐야 한다.
상가 앞 횡단보도의 차량진입 방지용 말뚝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조분이 할머니(가명·82)는 이날만 자리를 세 번이나 옮겼다. 말뚝에서 등받이 없는 벤치로 옮겼지만 허리가 너무 아파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상가 1층 창틀 구석이다. 마음만은 2층 카페로 가고 싶지만 계단을 오를 엄두는 나지 않는다.
학산종합사회복지관 관계자는 "'월성주공은 낙후된 곳'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이 과연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처럼 낙후된 환경이 방치되니 주민 의식도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며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권리 주장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다. 주민들의 항의가 없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 존중'이라는 바탕 없는 소극적 행정이 슬럼화를 가속시킨다"고 꼬집었다.

◆미래 생각 않는 청년세대
배달이 몰리는 시간이라기엔 한참 이른 15일 오전 10시. 월성2동 주공아파트단지 주차장에는 10대 가까운 오토바이가 몰려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입구에서 청년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더니 제 오토바이를 찾아 자리를 떠났다. 주공아파트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생계수단인 '배달'을 나가는 길이었다.
10년 전 이곳에 들어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는 최재원(가명·44) 씨는 친한 친구로 26살, 32살 청년을 소개했다. 이들 역시 배달이나 PC방 아르바이트에 종사하고 있지만 일자리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했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고 싶지만 마땅한 일감이 보이질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최 씨는 유일한 친구인 이들이 이곳을 떠나버릴까 두렵다. 지난 10년 동안 친하게 지내던 청년 6명이 모두 이곳을 떠났지만 도통 소식을 알 길이 없다.
복지사들에 따르면 이곳에 거주하는 청년세대 대부분은 '본인의 삶'을 선택하고 결정해야할 때 조언을 받을 만한 곳이 마땅히 없다. 가정형편이 어렵다보니 이들에겐 미래를 꿈꾸는 대신 당장 생계활동부터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안정적이지 못한 청년들의 삶은 방치된 오토바이가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아파트단지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인 오토바이가 넘어진 채로 흩어져 있었다.
방치된 오토바이에 방치차량 처리예고 안내문을 붙이던 경비원은 "주인을 기다리다 안내문을 붙인다. 젊은 사람들이 이사를 가면서 버리고 간 오토바이일 것인데 잘 살고 있는지…"라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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