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의 뒷이야기에는 궁금증과 더불어 그들의 허위의식을 폭로하는 쾌감이 동반된다. tvN 토일드라마 '마인'은 바로 그 재벌가 뒷이야기를 가져와 치열한 여성 심리극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을 끄집어내는 드라마다.
◆재벌가 며느리들이 가진 것과 못 가진 것
tvN 토일드라마 '마인'은 드론을 띄워야 집의 전체 구조를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효원가(家)의 대저택을 부감으로 보여주며 시작한다. 입구에서부터 건물까지 가려면 차 없이는 도저히 갈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정원 가운데 카덴차와 루바토라고 불리는 두 저택이 서 있다. 훨씬 큰 카덴차에는 효원가의 맏며느리 정서현(김서형)이 살고, 작은 루바토에는 둘째 며느리 서희수(이보영)가 산다. 그리고 재벌가가 그러하듯이 이들은 무수히 많은 메이드들의 보필을 받는다. 음식이나 청소를 전담하는 메이드도 있지만, 효원가의 자제를 보필하는 프라이빗 튜터도 있다.
시대 배경은 현재지만 이들의 위계구조는 마치 조선시대 같다. 효원가 사람들이 주인이라면 메이드나 튜터는 이들의 하인들이다. 그들은 대저택에 함께 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선에 의해 경계가 구분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경계. 그건 다름 아닌 자본주의 사회를 고스란히 은유하는 축소판이다. 먹고 싶은 건 요구하는 대로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사고 싶은 건 다 살 수 있으며 하고 싶은 것 역시 뭐든 말 한 마디로 할 수 있는 효원가 사람들이 모든 걸 다 가진 이들처럼 보이는 반면, 거기서 그들의 명령에 따라 일을 해주는 메이드들은 하인 취급을 받으면서도 돈이 아쉬워 쫓겨날까 전전긍긍하는 못 가진 자들처럼 보인다. 그런데 과연 이건 사실일까.

드라마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들의 실체를 끄집어내기 위해 두 인물을 '촉매제'처럼 투입한다. 메이드로 들어오는 김유연(정이서)과 둘째 며느리의 아들 하준의 프라이빗 튜터로 들어오는 강자경(옥자연)이 그들이다. 김유연은 효원가 장손인 한수혁(차학연)이 서로 방을 바꿔서 자보자는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잠잠하던 대저택에 파문을 던진다. 그저 '도련님'이 원해서 하게 된 일이지만, 한수혁은 점점 그 방과 방주인인 김유연에게 빠져들고 급기야 이 사실을 알게 된 왕사모님 양순혜(박원숙)에게 뺨을 맞고 내쫓긴다. 하지만 다시 김유연을 저택으로 데려온 한수혁은 오히려 양순혜에게 다시는 김유연을 아프게 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반면 강자경은 튜터로 들어온 것이지만 이상하게 하준의 친엄마처럼 행동하며 선을 넘는다. 자신이 낳지는 않았지만 하준에게 살뜰한 엄마의 정을 쌓으며 살아온 서희수는 불편함을 느끼며 강자경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그가 진짜 하준의 친모라는 걸 알게 된다. 즉 김유연과 강자경이라는 인물을 통해 효원가 사람들은 가진 것만큼 '갖지 못한 것'이 존재한다는 걸 드러낸다.
한수혁은 이 재벌가의 장손이지만 편안히 잘 수 있는 방 한 칸마저 자신이 선택할 수 없고 심지어 사랑도 마음대로 가질 수 없다. 서희수는 모든 걸 다 가졌다 생각했지만 친모가 나타나면서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된다. 전부라고 생각했던 아들과 남편 모두 강자경에 의해 순식간에 빼앗길 위기에 처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가진 허위의식 비판
'마인'은 영어 'mine'으로 '나의 것'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다소 철학적인 질문을 제목으로 담고 있다. 그래서 효원가 사람들이 스스로 가졌다 생각하는 것들이 어떤 계기를 통해 갖지 못한 것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과정을 그리려 한다.
맏며느리인 정서현은 전형적인 재벌가 태생의 인물로 대내외적인 일들을 비즈니스적으로 풀어간다. 하지만 모든 실권을 쥐고 있는 이 인물 역시 동성 연인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며 살아간다.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갖지 못하는 것들(그건 사랑이나 충만한 영혼 같은 것들이다.)이 존재하고, 이것의 부재는 이들을 결코 행복으로 이끌어주지 못한다. 효원가 사람들의 정신적인 멘토 역할을 하는 엠마 수녀(예수정)는 이들을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지옥에 빠진 거예요. 지옥에서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거든요. 만족하지 못하니까…"

가진다는 건 분명한 경계를 나누는 일이다. 그래서 효원가의 이 대저택은 무수히 많은 경계들이 세워져 있다. 그 경계는 넘지 말아야할 선이기도 하다. 주인들은 원하면 메이드의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할 수 있지만, 메이드들은 심지어 허락을 받아야 어떤 공간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자본에 의해 위계와 경계가 세워지지만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현재의 상식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상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 곳 사람들이 애써 경계를 나눠 살아가는 모습은 마치 연극적인 느낌마저 준다. 현대사회의 카스트제도를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이러한 물질과 자본에 의해 인위적으로 나뉜 경계와 선은, 인간이 한 공간에서 함께 어우러질 수밖에 없는 관계 속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그건 마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냄새'처럼 섞이거나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하준의 튜터로 들어왔지만 사실은 친엄마인 강자경은 그래서 그 경계를 넘어간다. 어찌 엄마가 그 선을 지켜낼 수가 있을까.
효원가에서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인정할 수도 없는 메이드 김유연과 선을 지켜야 하는 한수혁도 마음이 움직이는 걸 막기는 어렵다. 인위적으로 막고 있는 건 자본이 만들어내는 위계와 경계이고, 마음이 움직이는 건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래서 '마인'이 담고 있는 효원가에 벌어지는 파문과 갈등들은 묘하게도 자본주의 사회가 가진 허위의식을 비판하는 도발을 담고 있다. 가진 것으로 경계를 나눠 저들과 우리들을 구분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허약하고 허망한 일인가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재벌가 이야기의 파격과 성찰적인 시선
'마인'은 최근 보기 드문 재벌가의 여성 심리극이면서, 동시에 자본주의 시스템을 비판하고 성찰하는 드라마다. 드라마는 효원가의 며느리들이 맞닥뜨린 사건들과 이를 해결해나가는 파격적인 이야기만으로도 시선을 잡아끄는 면이 있다.
예를 들어 하준이가 학교에서 엄마가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한 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하자, 서희수가 나서 그 아이의 엄마를 보기 좋게 응징하는 과정이 그렇다. 보통 서민들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돈과 권력을 가진 저들이 보여주는 응징은 그래서 양가적인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시원하면서도, 우리는 갖지 못한 저들의 힘을 실감하는 장면이니 말이다. 이렇게 말 한 마디면 상대방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이들이 만나는 위기 상황들은 그래서 그 갈등의 결과가 크다는 점에서 극성도 높을 수밖에 없다. 이건 마치 백미경 작가의 성공작이었던 JTBC '품위 있는 그녀'가 보여줬던 힘과 유사한 지점이다.
하지만 '마인'은 이 자극적이고 파격적인 재벌가의 막장에 가까운 이야기에 '성찰적인 시선'을 담았다. 그것은 효원가에서 벌어진 사건을 내레이션으로 전하는 목소리의 주인공인 엠마 수녀의 시선이다. 자신 역시 어딘가 재벌가와 관련이 있었던 인물처럼 보이는 엠마 수녀는, 그 허망한 재력의 세계에서 초월한 시선으로, 여기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설명해나간다. 이 성찰적 시선은 그래서 '마인'이 자극과 파격으로만 폭주하는 걸 막아주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과연 이 성찰적 시선은 우리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민낯을 보여주게 될까. 이 드라마가 주는 남다른 기대감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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