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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IT 바보

박소현 피아니스트
박소현 피아니스트

며칠 전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자 한 패스트푸드점에 들렀다. 차 타고 오고가며 드라이브스루만 이용했지 실제 매장에 들른 건 참 오랜만이었다. 가서 주문을 하려고 보니 점원 대신 커다란 키오스크 두 대가 놓여있었다. 무인자판기야 조작도 쉽고 요즘 같은 비대면 권장 시대에 딱 맞는 주문방식이란 생각에 별 거부감없이 이용하려던 참이었다. 먼저 오신 할머니께서 조작법에 익숙지 않으셨던 건지 이것저것 눌러보고 취소하기를 몇 번이나 하셨다. 점심시간대라 그런지 점원들도 모두 바빴고 키오스크에는 줄이 점점 길어졌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 들른 패스트푸드점에서 이게 무슨 시간 낭비인가, 라는 생각에 내 표정도 점점 어두워졌다. 결국 한 점원이 와서 일은 곧 해결되었지만 시간이 버려졌단 생각에 짜증도 슬슬 치밀었다. 그러던 찰나, 문득 몇 해 전에 나도 기계 앞에서 버벅거린 기억이 떠올랐다.

운 좋게 문화재단에서 지원을 받아 이탈리아에 연주를 다녀온 해였다. 귀국 후 다시 유럽대륙에 가는 것은 시간적인 여유도 허락되어야 했지만, 비행기 삯이며 체류비가 만만치 않았기에 지원을 받게 된 것은 무척 큰 행운이었다. 신나고 들뜬 마음으로 준비를 하던 중 'e-나라도움'이라는 큰 산을 만나게 되었다. 'e-나라도움'은 국고보조금의 예산 편성 교부 및 집행 등을 투명하게 진행하고 처리하게 도와주는 사이트인데 내가 지원받게 된 모든 금액을 이 사이트를 통하여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조금 귀찮을 뿐이지 인터넷을 통해 일을 처리하는 것은 그냥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는 것 정도로 간단한 일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1980년대 중후반생인 나는 통칭 밀레니얼 세대라 불리는, 컴퓨터 그리고 정보기술(IT)과는 아주 친한 세대이다. 스스로 옛날 서양음악을 전공한 아날로그적 감성을 지닌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컴퓨터 조작 같은 디지털 미디어는 이미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접했던 터라 흔히 말하는 IT 기술에 크게 뒤떨어진 삶을 산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e-나라도움' 같은 사이트에서 일 처리는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접속을 하였더니 웬걸, 로그인만 제대로 했지 도대체 어디에서 무슨 배너를 클릭하고 무엇을 적어넣어야 하는 건지 앞이 캄캄해졌다.

결국 집행 마감일까지 몇날 며칠을 끙끙거리다 재단 직원과 몇 시간 동안이나 전화로 씨름하고서야 겨우 해결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에 'e-나라도움' 사이트의 사용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비판적 기사를 보고 '나만 어려웠던 게 아니었구나' 하는 아주 조금의 위로를 얻은 것을 빼면, 스스로가 바보처럼 느껴졌던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음식점 키오스크 앞에서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은 점점 빠른 속도로 기계화되고 있는데 사람이 그 속도에 맞춰서 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흐름에 끌려가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기계에 밀려 사람이 두 번째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생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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