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숨은 옛 절터로 향했던 기록들이 한 권의 기행에세이집으로 탄생했다. 박시윤 작가의 신작 '잇대고 잇대어 일어서는 바람아'다.
7번 국도 인근에 있는 절터를 찾아다녔다. 복원 중인 곳도 있지만 대개는 그곳에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흔적이 겨우 남은 곳들이다. 불자도 아닌 그가 성지순례처럼 억척스럽게 절터의 흔적을 좇고 사연을 들춰낸 이유는 존재의 사멸을 톺아보려는 욕구가 아닌 '힐링'에서 나왔다.
그는 "가는 곳마다 그곳이 내 삶의 안식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종일 들고 나는 바람이 가벼웠으므로 질리지 않았다. 있었으되 사라진 곳, 오래되고 낡은 것, 거칠고 둔탁한 것, 찌들고 병든 것, 허물어지고 쇠락한 것. 유별스럽게 찾아다닌 곳은 죄다 한 곳으로 향했다. 나는 조금씩 아름다운 소멸에 물들고 있었다"고 썼다. 작가는 그것을 집착이고 중독이라고 말한다.
강원도 고성에서 부산까지 이어지는 동해안을 따라 밟은 절터 중, 23곳의 이야기를 골라 엮었다. 주민들의 증언과 구술도 담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존재를 알리고 모두가 공포에 휩싸였을 때도 침착하게 지속한, 순례같은 기행은 2년 남짓 이어졌다.
책의 절반은 강원 영동지역의 절터다. 한계령과 진부령, 미시령 등 대한민국 주요 고갯길을 숱하게 넘었다는 작가의 기행은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됐다. 어느 날 잡지에서 우연히 본 사진은 눈을 흠뻑 뒤집어 쓴 채 눈보라 속에 서 있던 탑 하나였다. 작가는 "그 사진은 눈발이 날리는 한겨울임에도 고즈넉한 적요가 풍겼으며 탑과 적요는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 떠돌았다. 꼭 만나야 할 인연처럼 매일 잠자리에서 한계령을 넘고 넘었다"고 했다.
작가는 결국 한계령 어디쯤에서 빈터를 지키고 선 탑과 만날 수 있었다. 과거로 향하는 통로인 듯 신비스러움마저 감돌았다는, 강원도 인제의 한계사지였다. 눈앞에 존재하는 신선의 땅에서는 햇살이 산등성을 올라타고, 바위를 올라타고, 나무들을 올라타고 와 풀밭에서 스러졌다. 산그늘도 내리지 않는 아침이었고, 바라보는 동안 무엇에도 걸림 없는 무한의 침묵이 밀려왔다고 작가는 묘사했다. 판타지 소설 마니아들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하는 공간처럼 읽힌다.
2011년 목포문학상 수필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한 작가는 울릉도가 품은 역사 이야기를 정리한 '우리가 몰랐던 울릉도, 1882년 여름'을 2019년 내기도 했다. 378쪽, 1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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