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의 일이다. 그녀는 한 시립교향악단의 클래식 공연을 관람했다. 그런 공연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시작 전부터 설렜다. 마침내 공연이 시작되었다. 악단의 지휘자는 외국인으로, 클래식에 문외한인 그녀의 눈에도 멋진 지휘였다. 연주 분위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고조되었다. 락밴드의 공연과는 다른 차원의 고양감이 그녀 안에 차올랐다.
어느새 공연이 끝났다. 청중의 박수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그녀도 힘껏 박수를 쳤다. 시간이 지나도 박수 세례가 끝나지 않았다. 자연스레 앵콜 공연이 이어졌다. 연주자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다시 자리를 잡았다. 시작한 곡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사계'의 '봄'이었다. 익숙한 멜로디가 귀를 자극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한참 몰입하던 찰나, 갑자기 연주가 뚝 끊겼다. 지휘자가 가슴을 움켜쥔 채 비틀거렸다. 멀리서 보는 지휘자의 몸짓은 과장된 데가 있어 마치 극적인 연출 같기도 했다. 관람객은 물론 무대 위의 연주자들조차 지휘자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잠시 후, 지휘자가 무대 위에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그제야 무언가 이상하다고 여긴 관람객들이 하나둘 일어났다. 그녀도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위의 상황을 초조하게 쳐다보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관람객 중 한 명이 달려나가 무대 위에 뛰어올랐다. 사실 그는 의사였다. 그는 쓰러진 지휘자의 상태를 확인하며 셔츠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그때, 다른 관람객이 한 명 더 무대로 뛰어왔다. 그는 자동제세동기를 쥔 채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위치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지나치기 마련인데, 마침 그 관람객은 제세동기의 위치를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는 소방관이었다.
내가 만약 이와 같은 내용의 소설을 썼다면 어떤 반응을 들을까. 모르긴 해도 다채로운 욕을 다양하게 들었을 것 같다. 지나치게 작위적이기 때문이다. 우연에 의지한 전개는 가장 게으르고 안일한 사건의 해결 방식이다. 그 순간에 갑자기 의사와 소방관이 나타난다고? 얘 소설 발로 쓰네, 라는 소리는 꼭 들었을 것 같다.
다행히 나는 이걸 소설로 쓰지 않았다. 눈치 빠른 이들은 알아차렸을 텐데 이 내용은 2015년 대구콘서트하우스 공연 중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나는 관람객으로 있던 '그녀'였다.
소설은 허구이다. 그런데 그 허구는 절대 허구처럼 보이면 안 된다. 완전한 현실처럼 보이도록 공을 들여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작위적인 요소는 개입될 수 없다. 그러니까, 그 어떤 작위의 세계가 굴러가기 위해서는 작위를 없애야 하는 셈이다.
가끔, 학생들의 습작에 작위성을 지적하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이거 진짜 있었던 일인데요."
그럴 때 나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입을 막는다. 참고로 제목만 빌렸을 뿐, 정영문의 소설 '어떤 작위의 세계'와는 조금도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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