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냐, 넌?"
언젠가부터 자꾸 스스로 사상 검열을 하게 된다. 난 어느 편에, 어느 지점에 서 있는 걸까.
여성이고 기자로 활동하며 여성 인권 보호와 사회적 안전장치 마련에 관심이 많지만 페미니스트 운동에 참여하는 자는 아니다. 최근 자주 발생하는 젠더 폄훼 논란에 하고픈 말도 답답함도 많지만 생각을 드러내기 쉽지 않다.
이념 같은 것에 얽매이지 않는 타입이다. 정치에는 별 관심도 없다. 어느 편인가가 아니라 누가 됐든 잘한 일은 잘한 거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의자다. 생각이 달라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기꺼이 손을 잡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드러내는 게 요즘 같은 세상을 살아가기엔 해롭다. 어느 쪽을 비판하거나 두둔해도 진영 논리를 피해가기 어렵다. 입을 다무는 게 상책이다.
세상이 온통 흑백논리다. 내 편이 아니면 무조건 적이 되는 집단 이기주의와 이분법적 편 가르기가 극으로 치닫고 있다. 이념·인종·성별·세대 간 날로 깊어지는 갈등의 골 사이는 무시와 혐오의 언어가 난무한다. 남에게 손가락질하는 일이 너무나 쉽고 흔해졌다.
그렇다 보니 평범한 소시민들조차도 끊임없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 검증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무섭고 피곤한 세상이 돼 버렸다. 손가락질을 피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들과 한편이 맞는지,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받아야 한다.
어느 집단에도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면 그저 몸을 사리는 게 최선책이다. 마치 "종교 갈등이 심한 아프리카 지역에 갔을 때 누가 종교를 물으면 기독교·이슬람교·가톨릭교라고 콕 집어 답하기보다 '무교'라고 하는 편이 생명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는 누군가가 해 준 이야기처럼 말이다. 차라리 어느 편도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일 때 날카로운 칼날을 피할 수 있는 서글픈 시대다.
'불온한 독서'라는 책에서 저자는 "내가 옳다는 맹목적 믿음은 오만이 되고, 오만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에 대한 폭력으로 쉽게 둔갑한다"고 분석했다. 편협한 가치로 편을 가르고, 타인을 혐오하는 폭력적인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진 데는 '나만 옳다'는 오만함이 저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손가락질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하는 비뚤어진 심리도 한몫 거든다.
생각해 보면 '내가 옳다'는 맹목적 믿음 그 자체가 누군가에겐 폭력이 될 수 있다. 이분법적인 사고가 매치되는 순간 대칭점에 있는 타인은 '그르다'로 매도되기 십상이다.
어떤 사람도 단 하나의 꼬리표로 규정 지을 수 없고, 세상에는 편 나누기로 무 썰듯 나눌 수 없는 영역이 너무도 많이 존재한다.
앞장서 편을 가르고 마구잡이 막말에 손가락질을 날려 대는 그들은 정말 생의 모든 순간, 모든 영역에 있어 완벽할까. 평생 기부 한 푼 안 한다고, 분리수거 안 한다고 그의 인생을 통째 잘못됐다고 매도할 수 없다. 겉보기에 사회운동에 적극적이고 흔히 사회 통념상 '좋은 일'이라고 일컫는 일에 앞장서는 이라고 해서 나쁜 구석이 하나도 없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부디 일단 손가락질부터 좀 멈추고 나부터, 그리고 주변부터 좀 돌아보면 어떨까. '나도 옳고 당신도 옳다'는 한발 물러선 태도로 말이다.
완벽하지 않고 서로 생각은 다르지만 각자 맡은 자리에서 묵묵히 행하는 최소한의 '선'(善)이 세상을 조금씩 나아지게 만들 것이라 믿는다. 최소한 이분법적 편 가르기로 타인을 깎아내리는 이들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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