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플러그&풀’ 암호화폐, 정부 아직 뒷북

박한우 영남대 교수

박한우 영남대 교수
박한우 영남대 교수

불과 수년 전만 해도 프린터 등을 새로 구입해 사용하려면, 내 책상 위 컴퓨터에 소위 드라이버(driver)라는 구동장치를 설치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컴퓨터 윈도우즈(Windows) 시스템이 새로운 하드웨어를 자동적으로 인식하면서 이러한 번거로움이 사라졌다. 소위 플러그 앤 플레이(Plug & Play·PnP) 세상이 된 것이다. 컴퓨터를 잘 모르더라도, 인간의 개입이 최소화되면서 컴퓨터가 하드웨어 변화에 스스로 적응할 수 있도록 발전된 세상이 된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선도국인 독일에서 2021년 4월 하노버 박람회가 온라인으로 개최됐다. 김인숙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박사에 따르면, 독일은 제조업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의 거세지는 경쟁을 따돌리기 위해 혁신적 시도를 추진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유럽의 데이터 생태계인 가이아-엑스(GAIA-X) 프로젝트를 선도적으로 추진하면서 이를 제조업에 접목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 기반의 맞춤형 스마트팩토리(Smart FactoryKL)를 선보이고 있다. 기존의 스마트팩토리보다 수요자 요구에 부응한 주문생산을 효율화하기 위해 플러그 앤 프러듀스(Plug & Produce) 시스템을 도입한다. 홈컴퓨팅에서 플러그 앤 플레이가 스마트팩토리에서 플러그 앤 프러듀스로 진화하면서, 공장의 기계장치와 생산설비가 주문생산에 맞도록 모듈(module)화되고 유연하게 변화하는 것이다.

이제는 암호화폐와 가상자산 세계에서도 플러그 앤 플레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으로 대표되는 블록체인(blockchain) 기술을 생각하면, 수많은 컴퓨터 장비가 가득 찬 소위 채굴장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암호화폐를 채굴하는 세상이 되었다. 사실 내 휴대폰에서도 지금 서너 개의 암호화폐가 매일 채굴되고 있다. 블록체인 세상에서 플러그 앤 플레이가 플러그 앤 풀(Plug & Pool)로 그 이름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플러그 앤 풀이라는 용어는 내가 여기서 처음 쓰는 것이다. 영어 알파벳 P로 시작되는 것에서 암호화폐 비즈니스와 관련된 용어를 생각하다가 나온 것이다. 영어 단어 'pool'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수영장'이라는 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세계적 거래소인 바이낸스(Binance)가 암호화폐 채굴과 비즈니스 등과 관련해 사용하면서 블록체인 분야에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명사 이외에 동사로서 'pool'은 '여러 사람들이 공동 활용의 목적을 갖고서 지식, 금전 등 여러 자원들을 모으다'라는 뜻이 있다. 따라서 스마트폰에서 사용하고 남는 컴퓨팅 자원을 암호화폐 채굴에 동원하고 그 대가로 블록체인 코인이나 디지털 토큰을 보상으로 받는 것이다.

휴대폰으로 획득한 토큰과 코인 등이 당장 금전적 수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22세기 범용 기술인 블록체인이 비트코인이라는 이름의 옷을 입고 21세기에 깜짝 등장해 사람들을 잠깐 놀라게 하고 사라질 줄 알았는데, 이제는 사회 전체를 혼란과 공포에 빠뜨리고 있다. 아니다. 2017년부터이니 사실 이런 현상은 시간이 꽤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변화된 플러그 앤 풀 체제에 수동적으로 구동장치를 설치하려고 시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구시대적 발상이 계속된다면, 발명도 진보도 혁신도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찾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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