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대구시민이 최고의 작품입니다

진짜 예술 작품은 따로 있지 않다. 코로나를 이겨내고 있는 대구시민들이 최고의 작품이다. ㈜빅아이디어연구소
진짜 예술 작품은 따로 있지 않다. 코로나를 이겨내고 있는 대구시민들이 최고의 작품이다. ㈜빅아이디어연구소

죽는다.

광고인의 아이디어는 대부분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 10개의 아이디어를 내면 세상에 탄생하는 건 1~2개 정도에 불과하다. 아이디어를 내는 것도 힘든데 그것을 탄생시키는 것은 더 힘든 일이다.

설득시켜야 하는 사람이 넘친다. 광고주의 과장님을 설득시켜야 하고 부장님을 이해시켜야 한다. 사장님을 납득시켜야 하고 회장님에게 확신을 줘야 한다. 사람 상대만 힘든 것이 아니다. 모든 광고주를 설득시키고 나면 결국 예산 문제에 봉착한다. 그렇다. 그놈의 돈이 문제다.

작년 어떤 기관의 광고를 맡게 되었다. 그때 제안한 카피 중 하나가 '대구시민이 최고의 작품입니다'이다. 작년 코로나가 터진 이후 대구시민은 슈퍼맨이 되어야 했다. 특히 생활 최전선에 있는 자영자분들은 숨소리조차 가빴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이겨냈다. 사실 지금도 이겨내는 중이다. 그래서 더 서글프다.

그들을 보며 생각한 것이 있다. 진짜 예술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코로나를 이겨낸 대구시민들이 진짜 예술이라고. 그들 자신이 진짜 작품이라고. 광고에서 그 말을 하고 싶었다. 액자 속에 그 어떤 작품보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광고를 버스에 게재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놈의 돈이 문제였다. 예산 문제에 봉착해 결국 이 아이디어 역시 사장되고 말았다. 한 가지 희망적인 건 완벽한 죽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칼럼을 통해 세상 빛을 봤으니 말이다.

살고 싶다.

나의 에버노트를 보면 죽어 있는 아이디어들이 넘쳐난다. 아이디어 무덤 폴더가 따로 있다. 폴더를 열어볼 때마다 나 좀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 같다. 하지만 때를 기다리고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참는다. 가장 적합한 주인이 가장 적절할 때 찾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광고를 구입한 광고주도 광고를 보는 사람들도.

코로나에 맞서 하루 하루를 힘겹게 버티어 내는 우리 자신이 최고의 작품이다. ㈜빅아이디어연구소
코로나에 맞서 하루 하루를 힘겹게 버티어 내는 우리 자신이 최고의 작품이다. ㈜빅아이디어연구소

'어떻게 광고해야 팔리나요'의 저자(주)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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