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육군 정량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육군 정량'의 의미를 모두 안다. 매 끼니 국이나 찌개를 포함한 1식 3찬을 규정된 양만큼 차별 없이 먹는다는 뜻이다.

미군처럼 모병 체제에서는 식사량을 더 늘리든 체중 조절을 위해 칼로리를 제한한 '셰프 샐러드'만 먹든 본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신체 건강한 청년들이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 개병제 군대의 배식은 단순히 식사 차원을 넘어선다. 하루 세 끼 식사는 전투력 유지의 핵심이자 엄격한 배식은 군 행정과 군율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식사도 전투'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

5주간의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미군 캠프에서 복무하던 1980년대 초의 경험이다. 훈련 시간에 쫓겨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신병 훈련소와는 달리 본인이 메뉴를 선택하는 '메스홀'(군대 등 집단의 식당) 문화는 군 생활 중 가장 이질적인 부분이었다. 젊은 시절, 문화와 생활 수준이 다른 집단에서 직접 피부로 느낀 점들이 4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다.

최근 부실한 군 배식 문제가 화제다. '육군 정량' 규정이 무색할 정도로 식판이 휑하다. 수북이 담은 밥에 반찬이라곤 담다가 말았는지 김치와 계란말이 몇 조각이 전부다. 모 부대 격리 장병은 '정량 40g에도 못 미치는 시리얼 20개, 두 살짜리 아이 밥이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사병 한 끼 급식비가 2천930원으로 고교생 급식비(3천625원)에도 못 미친다니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 심정은 어떻겠나.

비판 여론이 쏟아지자 서욱 국방부 장관이 대책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SNS에는 부실 배식 사진들이 빗발친다. 연간 국방 예산이 52조 원이다. 지금은 1950, 60년대처럼 병사가 배를 곯는 군대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라를 지키는 병사들이 먹는 문제로 속을 끓인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병사 식사 관리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무능한 지휘관이 수두룩하다는 증거다. 군대는 군기와 사기로 지탱한다. 군기만 강조하면서 부실한 배식으로 병사 사기를 떨어뜨리는 지휘관들을 국민 세금으로 계속 고용할 이유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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