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야당 전당대회를 주목하는 이유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진보적인 미국과 보수적인 미국이 있는 게 아닙니다. 미합중국이 있을 뿐입니다. 흑인들의 미국, 백인들의 미국, 라틴계의 미국과 아시아계 미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합중국이 있을 뿐입니다." 2004년 당시 초선에 불과했던 버락 오바마 연방상원의원의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이다. 진보와 보수, 백인과 소수계의 대비를 말한 다음 미국의 공식 명칭(United States of America)을 덧붙임으로써 분열된 미국이 아니라 단합된(United) 미국을 역설한 것이다. 국가가 분열되지 않고 하나로 단합되어야만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나라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담대한 희망'이라는 연설 제목이 시사하는 바가 그것이다. "어려움 가운데의 희망! 불확실함 가운데의 희망! 그 담대한 희망!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이자 이 국가의 기반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 더 나은 날들이 앞에 있을 거라는 그 믿음입니다." 오바마의 극적인 연설이 대중을 사로잡기는 했지만 민주당은 2004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연임을 저지하지 못했다. 대신 전국적 인물로 떠오른 오바마가 2008년 대선에서 47세의 나이에 미국 최초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계기가 된 게 바로 민주당 전당대회였다.

야당인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열기를 더하고 있다. 대표와 최고위원 출마자들이 각각 8명과 10명에 이르는 가운데 신진 돌풍이 거세게 부는 중이다. 일부 여론조사지만 원외인 30대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1위를 차지하는 결과가 나온 경우도 있다. 초선인 김웅, 김은혜 의원이 여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나경원, 조경태, 주호영, 홍문표 등 쟁쟁한 중진들이 관심에서 밀리는 형국이다. 울산 출신 김기현 원내대표에 이어 대구 출신 주 의원이 무난히 당 대표에 오르지 않을까 염려(?)하던 상황과는 딴판이 되어 버렸다. 비례대표지만 대여 관계에서 독보적인 활약상을 보이는 조수진 의원도 어제 최고위원 출마 기자회견을 가졌다. 영남당 이미지를 가진 정당에서 김웅 의원에 이어 호남 출신임을 강조한 회견 내용은 이례적이다. 야당 입장에서 보자면 치열한 경쟁 구도와 세대 대결 양상은 일단 긍정적이다. 후보 간 차별성이 크지 않았던 여당 전당대회와도 대비된다. 친이 친박, 친박 비박 논쟁이나 지역 대결 논란보다 세대 간 논쟁이 훨씬 생산적일 수 있다. 지난 4·7 재보선에서 우리는 젊은 세대의 표심이 선거 결과를 결정한 사실을 목격한 바 있다. 문제는 치열한 경쟁 과정에서 생산적인 논쟁보다 갈등과 분열의 씨앗을 심을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2007년 대선, 2012년 대선 경선에서 서로가 상대 후보의 치명적 약점을 물고 늘어지면서 결국 함께 나락의 길로 들어선 선례를 목격하지 않았는가.

국민이 야당 전당대회에서 듣고 싶은 메시지는 오바마가 말한 바와 다르지 않다. 분열된 정당 대신 단합된 정당, 갈라진 나라가 아니라 하나 된 나라의 청사진을 보고 싶은 것이다. 젊은이들의 표심도 포섭해야 하지만 장·노년층을 소외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호남과 중도층 구애도 필요하지만 영남과 보수층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년 대선 승리도 물론 중요하지만 선거 승리를 위한 정치공학에만 치중한다면 그런 지도자에게서 국민이 희망을 발견할 수는 없다. 윤석열, 김동연, 최재형 등의 이름을 거론하기 전에 자신이 품고 있는 담대한 희망이 무엇인지를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당 대표 혹은 최고위원이 되어 당을 어떻게 바꿀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당으로 만들 복안이 무엇인지를 알려야 한다. 나이가 몇 살이냐, 출신 지역이 어디냐, 과거에 무얼 했느냐는 드잡이는 듣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다. 젊은 꼰대도 있지만 나이 든 청년도 있는 법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다른 후보의 단점을 지적하더라도 품위 있고 절제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어느 정당이 선거에서 이기는지 여부는 국민에게 중요하지 않다. 대한민국의 기반이 무엇인지, 국민 앞에 더 나은 날들이 펼쳐질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정당이 승리하는 게 중요하다. 여당 전당대회에 이어 펼쳐지는 야당의 전당대회를 국민이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 한 가지임을 명심해야 한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