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민의 나무 오디세이] 인류에게 비단을 선물한 뽕나무

천연기념물 제559호로 지정된 경북 상주시 은척면 두곡리 뽕나무. 수령이 300년 넘고 키가 12m나 되는 노거수로 수형이 아름답다.
천연기념물 제559호로 지정된 경북 상주시 은척면 두곡리 뽕나무. 수령이 300년 넘고 키가 12m나 되는 노거수로 수형이 아름답다.

뽕나무 잎으로 누에를 치고 누에가 만든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뽑아 비단 옷감을 짜는 일은 농경시대의 중요한 산업이었다. 비단은 화학섬유가 개발되어 널리 보급되기 전에 인류가 만들어낸 옷감 중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중국에서 비단이 유럽으로 전해질 때 생긴 교역로가 바로 비단길이다. 독일 지리·지질학자 리히트호펜이 이름을 지은 실크로드는 비단이 동양은 물론이고 서양 사람들의 마음을 쏙 빼앗은 대표적 교역 물목임을 반증하는 역사적 용어로 자리매김 했다. 인류 문명 의식주의 한 축을 비단이 감당함으로써 양잠이 늘어나고 뽕나무의 수요도 자연스럽게 증가하여 재배 기술이 발달했다.

◆기묘사화의 단초는 뽕나무 잎

조선시대 중종(재위 1506~1544)14년인 1519년 11월 궁궐 안에서 발견된 나뭇잎 한 장 때문에 궁중이 발칵 뒤집혔고, 피바람이 몰아친 기묘사화(己卯士禍)의 사단이 됐다. 사림파의 급진적인 개혁에 불안을 느낀 훈구파가 조광조 일파를 몰아낸 사건이다. 나뭇잎에 과일 즙을 발라 벌레로 하여금 '走肖爲王'(주초위왕) 네 글자를 따라 갉아 먹게 하고는 역모로 조작했다. 왕조실록에는 '주초위왕'이 새겨진 나뭇잎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나 나무 이름은 나와 있지 않다. 다만 기묘사화와 관련된 전기와 내용을 수록한 『기묘록속집』(己卯錄續集)의 「구화사적」(構禍事蹟)에는 "(달콤한 즙으로) '주초가 왕이 된다'[走肖爲王]는 네 글자를 궁중의 동산에 있는 나뭇잎 위에 써 놓게 하였다. 혹은 뽕나무라고 한다. 그래서 산 벌레가 갉아먹어 자국이 나니 도참(圖讖)의 글과 비슷하게 되었다"(寫走肖爲王四字於禁園木葉上 或言桑木 山蟲剝食成痕 有似讖文)는 말이 나온다. 당시 궁궐에도 뽕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생뚱맞지 않다. 나뭇잎 한 장이 역사를 바꿔놓은 셈이다.

누에 먹이인 뽕잎.
누에 먹이인 뽕잎.


◆뽕나무·양잠에 얽힌 청사(靑史)

중국에서는 삼황오제(三皇五帝) 때 황제(黃帝)의 부인이자 서릉씨(西陵氏)의 딸인 누조황후가 비단을 최초로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그녀를 비단의 신으로 받든다. 상고시대 전설까지 소환해야 하는 비단의 역사에는 반드시 뽕나무가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찍이 삼한시대부터 뽕나무 가꾸기를 장려한 기록이 문헌에서 확인된다고 하고,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도 양잠을 장려했다고 한다. 양잠(養蠶)은 누에를 치는 일을 말하며 잠(蠶)은 누에를 뜻하고 잠실(蠶室)은 누에를 기르는 방을 가리킨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의무적으로 뽕나무를 심게 했는데 서울의 잠실은 조선시대 이곳에 뽕나무를 심고 양잠을 장려해서 생긴 지명이다. 지금은 번화가로 변해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실감한다.

중국 한나라 때 사마천이 쓴 역사책 『사기』(史記)의 다른 이름은 잠서(蠶書)다. 사마천은 남성의 성기를 거세당하는 궁형이라는 형벌을 받아 잠실에 보내져 울분을 토하며 사기를 집필했기 때문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환관이 되기 위해 거세 수술을 받고 잠실같이 어둡고 조용한 방에서 상처가 아물 때까지 지내는데 이를 '하잠실'(下蠶室) 즉 '잠실로 내려 보낸다'고 했다. 또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주인공 유비 현덕이 태어난 탁현의 누상촌(樓桑村) 집 울타리 옆에도 큰 뽕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탁현은 지금 허베이(河北)성 줘저우(涿州)시다.

◆'삼백(三白)의 고장' 상주에 천연기념물 제559호

신라시대부터 양잠산업의 중심지였던 경북 상주시는 쌀, 곶감과 더불어 누에고치가 많이 생산돼 '삼백(三白)의 고장'이라고 불렸지만 우리나라 다른 농촌과 마찬가지로 양잠업도 쇠퇴하여 올해 양잠농가는 14가구에 불과할 정도다. 그나마 경북잠사곤충사업장이 상주에 자리잡고 있어 전국에서 유일하게 누에고치를 수매해 명주실을 생산하지만 겨우 명맥만 이어가는 수준이다. 상주 곳곳에는 아직도 뽕나무가 많이 재배되고 있다. 특히 상주시 은척면 두곡리에는 천연기념물 제559호로 지정된 뽕나무가 있다. 나이는 3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2m나 되는 노거수다. 뽕나무로서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수형을 유지하고 매년 많은 양의 오디가 열릴 정도로 수세도 양호했으나 지난해와 올해 일부 가지가 부러지고 찢어져 나무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가지를 솎아냈다고 한다. 양잠이 성행하던 시절 주변은 온통 뽕밭이었으나 양잠이 사양길로 접어들자 뽕나무를 베 내고 다른 작물을 키우는 바람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뽕나무가 덩그러니 남아 상주의 오랜 양잠 역사를 입증하고 있다.

뽕나무는 낙엽활엽교목으로 키가 10m 넘게 자라지만 국내에서 재배되는 뽕나무는 관목처럼 나지막한데 오디를 따거나 뽕잎을 거두는 일을 보다 쉽게 하도록 나무 가지를 자주 잘라주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뽕나무 재배 용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전통적인 양잠과 식용 오디를 수확하기 위해서다. 이 중에서 오디 수확용 뽕나무의 재배면적이 더 넓다. 가성비 좋은 화학섬유에 밀려 실크의 수요가 예전 같지 않자 농가에서 누에를 치기보다 대부분 오디를 팔아 소득을 얻는다.

◆'뽕'에 얽힌 홍사(紅史)

1980년대까지만 해도 농촌에서 양잠은 아주 요긴한 농가 소득원이었다. 누에를 기르기 위해서 먹이가 모자라지 않게 밭에서 밤낮 없이 싱싱한 뽕잎이 달린 가지를 베어 와서 잠실에 넣어준다. 그 무렵 뽕나무 잎이 무성해지면 마을 처녀와 총각들은 남의 눈을 피하며 밀회를 즐겼다. '임도 보고 뽕도 따고'라는 속담처럼 뽕잎 따는 바쁜 철에 뽕나무밭은 청춘 남녀가 눈 맞추기 좋은 일종의 해방구였다. 뽕나무를 소재로 하거나 뽕밭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남녀상열지사는 문학 작품의 좋은 소재다. 1920년대 나도향이 지은 소설 「뽕」이 대표적이다. 1980년대에 이두용 감독은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배우 이미숙이 주연을 맡아 열연한 영화 '뽕'은 토속적 에로티시즘을 표방하며 당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앵글과 제목으로 눈길을 끌어 흥행에 성공했다.

뽕나무 열매인 오디. 소화를 돕는 것으로 알려진 오디는 6월 무렵 검게 익어간다.
뽕나무 열매인 오디. 소화를 돕는 것으로 알려진 오디는 6월 무렵 검게 익어간다.

◆입놀림 조심하라 '신상구'

쓸데없는 말을 조심하라는 뜻으로 충고할 때 뽕나무와 관련된 고사 '좌중소담신상구'(座中笑談愼桑龜)라는 말을 쓴다.

옛날 한 효자가 아버지의 병을 고치고자 강가에 나가서 1천 년 묵은 거북을 잡아 집으로 돌아가다 뽕나무 아래 그늘에서 쉴 때 거북이 "여보게 효자, 나를 솥에 넣어 100년을 고아봤자 죽지 않으니 헛수고 말게"라고 말했다. 그러자 뽕나무가 어리석게도 "무슨 소리냐, 나를 베서 불을 때보게. 고아지는지, 안 고아지는지"라고 자랑했다. 이 말을 들은 효자는 그 뽕나무 장작을 때서 거북을 고아 아버지 병을 낫게 했다고 한다. 쓸데없는 말과 어리석은 자랑 탓에 거북과 뽕나무는 목숨을 잃었다. 웃고 즐기더라도 설화(舌禍)나 구설(口舌)을 경계하라는 교훈이다.

그러나 영국의 정원사들은 뽕나무를 지혜의 나무라고 부른다. 봄에 나무 중에서 가장 늦게 새 잎을 내놓기 때문에 이를 보고 추위가 사라졌다며 믿고 씨를 뿌린다. 뽕나무의 꽃말이 '지혜'로 된 이유다.

집에서 재배하는 뽕나무의 한자는 상(桑)이고 산에서 자라는 산뽕나무는 자(柘), 열매인 오디는 상심(桑椹)이다. 그렇다면 우리말인 '뽕나무'는 어디서 나왔을까? 다양한 나무 이름을 엮어가는 「나무타령」에 나오는 '……십리 절반 오리나무/ 아흔 아홉 백양나무/ 방귀 뀌는 뽕나무/ 바람 솔솔 소나무……'라는 대목을 보면 방귀소리에서 나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오디를 많이 먹으면 위의 소화기능을 촉진시키고 배변을 순조롭게 해준다고 나온다. '뽕' 하는 방귀소리를 연상해서 뽕나무라고 부르게 됐다는 게 그럴듯하다.

고려시대 문신이자 문장가인 이규보(李奎報)는 『동국이상국집』 등에 꽃과 나무, 과일을 소재로 많은 시를 남겼는데 그 중 「우고」(寓古)는 오동나무와 뽕나무를 비교하며 '뽕나무는 심더라도 오동나무는 심지 말라'고 재미있게 일렀다.

我家種孤桐(아가종고동·우리 집에는 좋은 오동나무 심어)

待鳳凰不至(대봉황부지·봉황을 바랐으나 소식 없기에)

斲爲一張琴(착위일장금·베어다 거문고 하나 만들어)

彈作古漾水(탄작고양수·유수곡(流水曲)을 뜯었건만)

世無鍾子期(세무종자기·세상에 종자기 없으니)

誰肯傾其耳(수긍경기이·알아듣는 이 그 뉘런가)

隣家種桑桋(인가종상이·이웃집에는 뽕나무를 심어)

養蠶蠶易肥(양잠잠이비·누에 치니 잘도 자라)

吐得五色線(토득오색선·토해낸 오색실이)

織成美人衣(직성미인의·미인의 옷이 되어)

幸升君子堂(행승군자당·점잖은 연석에 나가)

終宴得相依(종연득상의·끝까지 귀여움을 받으니)

種桑易取容(종상이취용·뽕나무 심으면 쓰이기도 쉽고)

種桐難爲功(종동난위공·오동나무 심으면 쓰이기 어렵네)

寄語世上人(기어세상인·세상 사람에게 권하노니)

種桑莫種桐(종상막종동·뽕나무는 심어도 오동나무는 심지 마소 )

편집부장 chungham@imaeil.com

이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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