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도 한국의 현재 청년들이 경험하고 있는 취업절벽을 경험한 세대가 있다. 1993년부터 2005년 기간에 최종 학교를 졸업하고 노동시장에 새롭게 진입한 세대를 일본에서는 취업빙하기 세대라고 부른다. 이 세대는 일본 경제가 장기 침체에 들어가는 시점에 노동시장에 진입했기 때문에 앞서거나 혹은 늦은 세대에 비해 임금이나 노동 형태가 아주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현재 이 세대는 35~54세로 중년이 돼 노동력 인구의 핵심을 담당해야 함에도 약 270만 명, 즉 동 세대의 10명 중 1명은 비정규직에 고용돼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처해 있다. 이 같은 좋지 못한 경제 상태 때문에 취업빙하기 세대 중에는 결혼을 못 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일본에서 생애미혼율(50세 시점에 결혼을 한 적이 없는 사람의 비율)은 2020년에 남자는 26%, 여자는 17.4%로 매년 증가해 왔다. 경제적인 이유로 평생 독신으로 사는 사람이 많아지니 당연히 인구가 감소하고, 인구구조의 고령화가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일본에서 취업빙하기 세대가 생기게 됐을까? 가장 큰 이유는 버블경제의 붕괴로 일본 경제 상황이 악화됐을 당시 40대 중반이었던 단카이 세대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경직적인 고용 시스템을 유지하도록 노동조합과 투표권을 통한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단카이 세대는 1947년에서 1949년 3년 사이에 806만 명이나 태어났고, 1969년에 유명한 도쿄대학의 야스다 강당 점거 사건을 일으켜 도쿄대학의 입학시험이 중지될 정도의 과격한 학생운동으로 일본 사회에 충격을 주었으며, 일본 경제의 전성기를 충분히 누리는 등의 공통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세대다. 이 세대가 12~14년 전에 은퇴하면서 일본의 고령화율은 크게 상승하였고, 사회보장비(연금·의료·개호 등)의 지출도 많이 증가했다. 사회보장비가 국민소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 20.3%에서 작년 30.5%로 증가했고, 이 중 70% 이상이 65세 이상의 고령인구와 관련된 지출이다.
그런데 이 세대는 사회보장비를 받을 정도로 어렵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작년 말 일본 가계의 금융자산 잔고는 1천948조 엔으로 최고를 기록했는데, 전체 금융자산 중 60세 이상이 보유하는 비율이 약 60%라고 한다. 부동산 자산까지 포함한다면 일본의 고령인구는 젊은 세대에 비해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부유한 세대를 위한 사회보장비의 지출 증가는 생활보호, 고용안정을 위한 사회보장과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한 교육, 연구개발 등에 대한 국가 지원 그리고 사회간접자본(도로·철도·공항·항만 등)을 위한 공공사업에 대한 지출을 압박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일본의 도호쿠대학 연구 팀은 49세 이하 세대의 투표율이 1% 하락하면, 우리 돈으로 환산해 그 세대 일인당 78만 원 정도 손해를 본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2005년부터 고령인구가 투표율을 고려한 투표자 수에서 처음으로 중년 세대를 앞섰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노인들의, 노인들에 의한, 노인들을 위한 정치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이에 따라 한정된 자원이 노인들에 대한 사회보장에 집중적으로 배분되면서, 경제의 침체는 계속돼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아 가정을 꾸리기 어렵게 되고 인구는 계속 감소하고, 기본적인 삶의 조건인 주거, 교통, 의료, 치안 등의 서비스가 현재처럼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한 세대의 집단 이기주의가 선진국조차도 망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위의 일본 이야기가 현재 한국의 데자뷔임을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도 일본처럼 현재 586세대가 자신들의 엄청난 교육 투자로 키운 가장 우수하고, 디지털 기술에 친화적인 글로벌한 경쟁력을 갖춘 자식 세대를 희생시키며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형국이다. 586세대는 자신의 노후와 나라를 위해서도 노동조합과 투표권에 숨어 자리 보전에 급급하지 말고, 실력으로 젊은 세대와 경쟁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우수한 청년들이 가진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가진다면 한국은 헬조선에서 헤븐조선으로 변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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