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민숙 작 'Veronese Green' 130x130cm Oil on Canvas(2021년)
BC 500년경 부호와 문자체계가 어우러진 '점서'(占書)로 출발한 '주역'(周易)은 원래 그 원류를 좇아가면 중국 상고시대인 하(夏) 은(殷) 주(周) 삼대에 걸쳐 전쟁과 자연재난, 국가대사와 같은 국운을 건 중요한 결정을 해야할 때 사안의 길흉을 알아보기 위해 치러졌던 점들과 그 결과를 바탕으로 '은유'와 '함축'으로 기록한 경전이다. 요즘 말로 주역은 국가 중대사나 개인의 길흉화복의 전말을 수 천 년 동안 정리한 '빅 데이터'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축적된 '빅 데이터'를 분석해 유사한 유형의 사건이나 사안을 모아 '패턴화'했고, 이런 '패턴의 집대성'을 통해 미래의 일에 대한 진행과 결과를 추정한 주역은 '빅 데이터화-패턴화-미래 예측 가능성'을 축으로 엮어졌다.
이렇게 형성된 주역은 언제나 미래와 운명의 변화에 항상 불안하고 마음을 졸여야 했던 인간 존재에게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결과가 좋게 나면 심리적 평온을,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면 이를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담보해주는 기능을 했다. 주역이 동서양 석학들의 지성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까닭도 늘 미래에 대한 불안에 휩싸인 인간에게 최소한의 심리적 진정제 역할을 했기 때문이리라.
장민숙 작 'Veronese Green'을 한참 보고 있으면 여기서도 색의 패턴, 형태의 패턴을 유추해 낼 수 있다. 색은 녹색과 붉은 색, 그리고 양자의 혼합색이 두루 섞여 있으며, 형태는 주로 사각형의 조형언어로 사용해 가로와 세로로 연속적인 붓질이 이어지고 있다.
작지 않은 화면에 작가는 왜 이렇게 지난한 붓질로 자신의 그림세계를 그려나갔을까?
앞서 패턴의 연속성은 과거와 현재를 가로 질러 미래를 관통하는 시간 여행의 일종이라고 했다. 살면서 겪는 행과 불행, 연민과 슬픔, 고뇌와 한숨, 기대와 좌절, 질긴 우울, 혼란과 평온이 시간 속에 모두 녹아들어 있다. 사각형 하나하나에 일기처럼 자신의 기분이나 바람을 적었을 수도 있겠다. 또 장민숙의 이 작품은 색과 형태의 패턴이 사방으로 무한 자기복제를 하고 있다. 무한 자기복제의 특징은 언제나 동일한 형태가 계속 이어지리라는 논리적 추론을 통해 현재라는 시점에서 미래를 향하게 있고 미래 또한 현재의 존재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믿음 또는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경험이 하루하루 다가올 본질에 가까워지는 게 삶이라면 나에게 그림은 그 여정의 기록이다."
장민숙의 말마따나 '본질에 가까워지는 삶'은 무얼까? 여기서 본질은 궁극적으로 미래에 도착할 어떤 목표일 수도 있다. 그 때문에 미래 운명의 실체를 잡아보려 작가는 늦게나마 캔버스 앞에 서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이 작품의 제목 'Veronese Green'은 '베로나풍의 녹색'이란 뜻인데, 베로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가 된 이탈리아 도시다. '로미오와 줄리엣'하면 연상되는 '사랑'과 함께, 화면 전체를 수놓은 녹색과 간간이 있는 붉은 계통의 색감은 '희망', '평온', '안정'의 느낌을 준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