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선생, 중환자실 사망 환자 몸에서 튜브 좀 제거하세요."
호출을 받고 급히 중환자실로 향했다. 커튼으로 가려진 병상 앞에는 슬픔을 당한 가족들이 오열하고 있었다. 아직 체온이 식지 않은 망자의 몸에 꽂힌 튜브와 정맥관을 제거하면서 가족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런 애도의 말을 전하지 못했다.
"선생님, 저 이제 가망이 없지요?" 전문의가 되자마자 주치의를 맡았던 50대 말기 암 환자는 회진 때면 이렇게 물었다. 수술과 항암 치료까지 받았음에도 재발해 말기 상태에 이른 환자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회진 때마다 막막했다. 그저 손을 꼭 잡아드리는 것이 전부였다.
오늘날 우리 국민 네 명 중 세 명이 병원에서 임종을 맞고 있지만 의사들은 말기 상태의 환자를 돌보고 대화를 나누는데 서툴다. 의과대학에서 많은 임상 과목을 배웠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환자를 살리는 것만이 의사의 역할이고 죽어가는 사람을 돌보는 일은 의사의 역할이 아니라고 여긴다. 말기 환자와 대화를 나누는 방법에 대한 교육 역시 뒷전이다.
'병자가 약을 빨아들일 힘조차 없으니 생명이 오늘 내일이라는 뜻이다. 병자는 동생이 불려나가는 걸 눈여겨보고는 의심을 한다. 우선은 듣기 좋은 대답을 했더니 부쩍 희망을 품는 내색이지만······. 그러나 또 그쯤이라면 의사가 왜 직접 말하지 못할까 싶어 절망의 빛을 띤다.'
염상섭의 단편소설 '임종'에 그려진 장면은 70여 년이 지난 오늘의 병실에서도 볼 수 있다. 의사들은 말기 환자와의 대화 과정에서 혹시나 마지막 희망마저 무너뜨리지 않을까 두렵다. 그러나 미국 하버드대 다나 파머 암연구소 종양 내과 의사들이 말기 암 환자 332명과 대화를 나눈 결과를 보면 의사와의 솔직한 대화가 오히려 환자의 스트레스를 줄였다. 의사와 소통을 잘한 가족 역시 환자 사망 후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낮았다. 반면 의사와 대화를 나누지 못한 환자의 삶의 질은 나빴다.
몇 해 전 '나쁜 소식 전하기'라는 문항이 의사 국가고시 실기 시험에 추가되자 의과대학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그러나 의대생을 위한 체계적인 죽음 교육은 턱없이 부족하다. 미국 의과대학에서는 '죽음 교육'을 강화하는 추세다. 일례로 뉴욕의 마운트 사이나이 의대생들은 말기 환자 치료에 직접 참여해 '연명 의료 결정' 등 임종 시기의 대화법을 일찍부터 배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연구소가 2010년 발표한 OECD 국가별 '죽음의 질'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32위로 최하위권이었다. 죽음마저 과도하게 의료화된 우리 사회의 죽음 문화가 불러온 초라한 성적표다. 영국이 1위를 차지했는데 죽음에 대해 자유롭게 대화하는 문화와 '죽음 교육'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우리나라 의과대학에서도 '의학적 죽음'이 아닌 '인간적 죽음'을 가르쳐야 한다. 어떤 임상 과목보다 중요한 것이 죽음 공부이고 어떤 술기보다 연습이 필요한 것이 말기 환자와의 대화다. 태어날 때 그러했듯 생의 마지막 길목에서도 '존엄한 죽음'을 지켜주는 의사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하다.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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