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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천경자(1924-2015) ‘장미’

미술사 연구자

종이에 사인펜, 28×34㎝, 개인 소장
종이에 사인펜, 28×34㎝, 개인 소장

울타리를 따라 장미가 눈부시다. 초록에 초록을 더하는 이파리와 붉은 꽃잎의 대비가 한낮의 볕에 더욱 환상적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향기를 느껴본다. 가장 멋진 송이를 골라 사진도 찍는다. 꽃집의 장미보다 길가의 장미가 더욱 싱싱하다. 장미가 제철이라 눈에 한껏 들어오면 이제 여름이구나 한다. 오월은 장미의 계절이다.

꽃은 누구나 좋아하므로 화가들도 즐겨 그린다. 천경자는 그림에 꽃을 많이 등장시킨 '꽃의 화가'이다. 장미꽃을 유난히 좋아했다. 하필 화려한 장미였던 것은 친척 오빠네 집 울타리에 장미가 무진장으로 있어 허락을 받아 얻기도, 때로 슬쩍 치마폭에 숨겨 나오기도 수월했기 때문이라고 수필 '나와 장미'에 썼다. 또 하나의 이유는 "빈한한 생활에서 오는 어떤 반발작용에서 마음마저 사치 않을 수 있느냐"하는 심정 때문이었다. 먹고살기에 쫓기면서도 정신의 사치를 포기할 수 없었던 그런 심정이 예술가로서 성공을 가져왔을 것 같다.

'장미'는 종이에 검은 사인펜으로 그린 스케치이다. 천경자는 스케치를 사인펜으로 많이 했다. 한 가운데 장미가 있고 둘레를 다른 꽃과 잎으로 장식한 꽃다발을 그렸다. 사이사이에 색깔도 스무 군데 넘게 표시해 놓았는데 한자와 일본어도 섞여 있다. 천경자가 화가가 되려했을 때 한반도에는 제도권 미술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그림 훈련을 받은 습관이 남은 것이다. 털끝 하나까지 묘사하는 사생(寫生)으로 그림을 배웠고, 사용하는 재료를 장악하고 밑그림을 철저하게 준비하는 교육을 받았다. 천경자는 1941년 17세 때 도쿄의 여자미술전문학교에 유학했다. 20대부터 개인전을 열었으며 1954년 30세 때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교수로 초빙되어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 간 엘리트였다.

활발하면서도 진득한 개성의 필력으로 꽃다발로 뭉쳐진 여러 가지 모양과 색의 꽃을 찬찬히 스케치했다. 미술가들의 스케치, 소묘, 크로키, 에스키스 등은 '드로잉'으로 분류되며 전시, 아카이브, 경매, 수장 등에서 독립 영역을 이루고 있다. 완성작을 위한 밑그림이나 아이디어를 이미지로 기록한 습작 또한 손재주의 증명을 넘어 자체의 독자성을 인정받는다. '쌩얼'에 대한 호기심도 충족시켜 준다.

드로잉은 그리기를 신체의 반응이라는 본능적 행위의 차원에서 보여주는 미술 장르이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잡아내려는 행위이지 무엇을 그려서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즉시성이라는 순간의 아우라가 깃들고 머리의 간섭을 받지 않은 손의 생생함으로 작가 고유의 미적 감수성이 경이롭게 드러나기도 한다. 많은 경우 드로잉은 작가가 어떤 것에 관심을 가졌고 무엇을 그려보았나 하는 자취이다. 장미 드로잉을 많이 남긴 천경자는 장미의 화가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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