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흰개미 그리고 암

임재양 임재양외과 원장

임재양 임재양외과 원장
임재양 임재양외과 원장

마당이 생기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이 개미였다. 개미는 긍정적인 추억의 벌레다. 개미같이 열심히 일을 해서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동화도 있었고, 벌과 함께 사회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곤충으로 재미있는 많은 연구 결과를 봐 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집을 짓고 2년이 지난 초여름, 개미는 반가운 모습이 아니라 골칫거리로 다가왔다. 흰개미였다. 날이 더워지는 4월 말이 되자 어느 날 복도에 날개 달린 개미가 새까맣게 죽어 있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흰개미로, 목조 주택을 무너지게 하는 아주 무서운 개미라는 자료들이 올라와 있었다. 과거에는 우리나라에 없었는데, 기후변화 때문에 보이기 시작하면서 문화재를 포함한 목재 건물에는 치명적인 존재라고 겁을 주었다. 건축가도 잘 모르겠다고 하고, 전문 방역 업체를 불렀더니 해결이 어렵다고 했다. 완전 해결이 안 돼도 방역을 한 번 해 보자고 제안했지만 비용이 엄청났다.

문제는 생겼는데 해결 방법은 없고, 어느 한 곳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태에 놓이자 괜히 목재로 집을 지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직접 나에게 닥친 문제를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밤을 새워 흰개미에 대한 자료를 찾아 나섰다. 공부를 하면서 점점 흰개미에 대해 관심이 늘어갔다. 이해관계가 걸리니까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고 모르던 사실들을 알게 되니 재미가 있었다. 일반 개미와는 다른 흰개미의 독특한 사회성은 아주 흥미진진했다. 공부하면서 모르는 부분들을 알기 위해 전문가를 찾다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외국에서 흰개미를 전공한 교수님을 알게 되었다. 우선 메일로 내가 궁금한 부분들을 묻기 시작했다. 그렇게 메일을 몇 번 주고받다 보니 서로에 대해서도 얘기가 오고 갔고, 나에게 왜 그렇게 흰개미에 관심이 많은지 물었다. 그제야 내가 처한 처지를 얘기하고 직접 해결하기 위해 이렇게 공부한다는 대답을 주었다. 그랬더니 대뜸 자기가 해결해 주겠다는 답이 왔다.

그렇게 나는 목조 주택에 나타나는 흰개미 문제를 해결했다. 해결했다는 의미는 흰개미를 완전 퇴치했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 편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제는 흰개미가 나와도 걱정이 안 된다. 평생을 같이 살아가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지난 5년간 흰개미에 대해 정리한 내용은 이렇다. 흰개미가 밖으로 나오는 것은 날씨가 따뚯해지면서 짝짓기를 하기 위해 날아오르는 것이므로 그 며칠만 지켜보면 된다. 흰개미는 완전 퇴치할 수는 없고 매년 개체수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흰개미가 나무를 먹는다고 집이 무너져 내리지는 않는다.

재미있는 현상이었다. 흰개미를 쉽게 이해한 것은 어쩌면 내가 전공하는 유방암과 비슷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는 쉽게 암 완치를 얘기하지만 수술, 항암제, 방사선 치료를 해도 암은 완치란 얘기를 하지 않는다. 암 세포를 조정 가능한 수준까지 만들었다는 얘기, 관해라고 한다. 100% 완벽하게 완치를 원하는 환자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 있다. 하지만 의사들은 암을 강력하게 1차적인 치료를 하면 나머지는 평생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암은 더 이상 무서운 병은 아니라고 얘기한다.

흰개미와 암의 공통점은 완전 퇴치는 어렵지만 두려워할 상대는 아니라는 것이다. 상대를 이해하고 공존하면서 평생 관리한다는 인식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그냥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흰개미 경우는 좋아하는 습기를 줄이고, 통풍에 신경을 쓴다. 암인 경우는 적당한 운동, 건강한 음식, 스트레스 관리 등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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