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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사투리] 한족의 말도 소통 어렵게 하지만 농촌에선 정겨운 ‘고향의 소리’

④외국의 사투리 보존과 현황-1. 사투리 대국 중국

4.외국의 사투리 보존과 현황

중국의 사투리는 55개 소수민족의 민족어는 차치하고, 한족의 말도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곳곳에 뿌리박혀있다.
중국의 사투리는 55개 소수민족의 민족어는 차치하고, 한족의 말도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곳곳에 뿌리박혀있다.

1.사투리 대국, 중국

세계 1위 인구 대국, 아열대에서 냉대까지의 광대한 영토, 56개 민족…. "십 리, 백 리 떨어지면 풍속이 다르다."는 속담이 중국의 각양각색 풍토와 삶의 모습들을 잘 말해준다.

이런 우스개가 있다. 중국인들이 죽을 때까지 다 못해보는 4가지. 중국 음식을 다 못 먹어보고(가짓수가 너무 많아서), 중국 땅을 다 못 가보고(너무 넓어서), 한자를 다 못 써보고(한자 수가 너무 많아서), 중국말을 다 못해보고(사투리가 너무 많아서) 일생을 마친다는 것이다.

다민족·다문화·다언어 국가 중국의 또 다른 속살을 보여주는 코드가 사투리이다. 흔히 말하는 '중국어'는 14억 인구의 93% 정도인 한족(漢族)의 언어이다. 중국에선 '한어(漢語)', 대만(臺灣)에선 '국어(國語)', 화교들은 '화어(華語)'라고 칭한다.

제주 사투리 외엔 전 국민 의사소통에 큰 문제없는 우리와 달리 중국의 사투리는 한마디로 '어마무시'하다. 55개 소수민족의 민족어는 차치하고, 한족의 말도 소통 불가능한 사투리들이 곳곳에 뿌리박혀 있다. 때로는 통역이나 필담, 바디랭귀지가 동원될 정도다.

지역별로 크게 7개 방언이 대표적이다. 북방 방언(북경,동북 일대), 오(吳)방언(상해,절강성 일대), 상(湘)방언(호남,호북성 일대), 공(贛)방언(강서성 일대), 객가(客家)방언(광동·강서·복건성 일대), 민(閩)방언(복건성 일대), 월(粤)방언(광동성·홍콩·마카오) 등이다. 물론 이게 다가 아니다. 광범위한 성급(省級) 방언들에서 다시 숱한 차(次)방언들이 파생된다.

중국의 사투리는 55개 소수민족의 민족어는 차치하고, 한족의 말도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곳곳에 뿌리박혀있다.
중국의 사투리는 55개 소수민족의 민족어는 차치하고, 한족의 말도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곳곳에 뿌리박혀있다.

양자강을 기준으로 남북 간 사투리에도 차이가 크다. 북경 등 북방지역과 산동, 섬서, 사천성 등지의 말은 차이는 있되 어느 정도 소통된다. 반면 상해(上海), 절강성(浙江省), 복건성(福建省), 광동성(廣東省) 등 동남 연해지역 말은 표준어만 아는 사람에겐 외국어나 다름없다. 한국에서 유학한 차이쥔쭈(蔡君竹,37)씨는 지역방언 중 표준어에 가장 가깝다는 흑룡강성(黑龍江省) 출신. "남쪽으로 갈수록 우리 중국인조차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사투리가 많다. 아주 복잡하다"고 말한다.

소통이 어렵기로는 상해어와 광동어가 대표적이다. 어휘나 발음, 성조(聲調) 등에서 표준어와 확연히 다르다. 상해 출신으로 한국에서 유학한 진신희(陳晨曦,39)씨가 들려준 상해말 몇가지. "안녕하세요!"의 표준어는 "니하오(你好)!"이지만 상해에선"농호(儂好)!"로 통용된다. "오랜만입니다"의 "하오지우뿌지엔(好久不見)"은 "쌍위음마지(長遠無見)", 헤어질 때 인사말 "짜이지엔(再見)!"도 "쩨외(再會)!"로 바뀌는 식이다.

홍콩 영화 속 대사로 우리 귀에 낯설지 않은 광동어는 발음도 어렵지만 성조가 9가지나 돼(표준어는 4성) 리듬감이 유난하다. 광동어 아침 인사말은 "레이호우 조우산"(你好, 早晨)인데 표준어 발음 "니하오 자오천"과 사뭇 다르다. "감사합니다"의 "씨에씨에(謝謝)"도 광동어로는 "음꼬이(唔該)" 또는 "또제"로 딴판이다. 홍콩 출신 영화배우 주윤발(周潤發)의 표준어 이름은 '저우룬파'지만 광동어로는 '짜우연팟', 유덕화(劉德華)의 표준어 이름 '리우더화'는 광동어로 '라우딱와'이다.

중국의 사투리는 55개 소수민족의 민족어는 차치하고, 한족의 말도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곳곳에 뿌리박혀있다.
중국의 사투리는 55개 소수민족의 민족어는 차치하고, 한족의 말도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곳곳에 뿌리박혀있다.

'같은 중국 다른 언어'가 숱하다보니 해프닝도 많다. 중국 유튜브 '다채로운 중국말(多彩中國话)' 한 장면. 백설공주가 빨갛게 잘 익은 사과를 먹으려 하자 일곱 난장이들이 먹지 말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백설공주는 한입 베어 물었고, 이내 쓰러진다. 난장이들이 야단법석을 떠는 가운데 눈을 뜬 백설공주가 말한다. "당신들 말, 한마디도 못 알아듣겠어요". 일곱 난장이들이 저마다의 사투리로 떠들어대니 그럴 수밖에.

한 아주머니가 물가에서 "아이가 빠졌다"고 소리쳤다. 지나던 사람이 얼른 물에 뛰어들었는데 알고 보니 빠진 것은 신발. 표준어로 '신발'은 '시에즈'이지만 어느 곳 사투리로는 '하이즈', 그런데 글자는 똑같은 '鞋子'이다. 물에 뛰어든 사람이 표준어 '하이즈(孩子: 어린아이)' 만 알았기에 벌어진 해프닝이다.

중국인들이 '영원한 주석'으로 숭앙하는 모택동(毛澤東)은 사투리로 인해 수모를 당한 적 있다. 시골서 상경해 잠시 북경대 도서관 사서보조로 일하던 청년 모택동은 유명한 호적(胡適) 교수의 철학 수업을 청강했다. 심한 호남(湖南) 사투리로 질문까지 해대는 도서관 말단 직원의 청강을 못마땅해 하던 호적은 어느 날 수업 중 말했다. "자네는 좀 나가주게." 훗날 중국 천하를 주름잡게 될 모택동은 그렇게 쫓겨났다.

현대 중국 표준어는 과거 황실과 관리 등 지배집단이 사용했던 북방 관화(官話)를 모태로, 북경음을 표준음으로 만들어졌다. '널리 통용되는 말'이라는 뜻의 '보통화(普通話:,푸퉁화)'이다. 56개 민족 14억 인구를 연결하는 소통 코드이다. 중국 정부는 표준어 보급에 매우 적극적이다. 1998년부터 매년 9월 셋째 주를 '전국보통화보급확대 홍보주간'으로 지정한 것도 그런 차원에서다. 하지만 상당수 농촌지역은 아직도 표준어 보급률 40% 정도이고, 티벳과 신강(新疆) 지역에선 표준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사투리를 뜻하는 중국어 '향음(鄕音)' 은 곧 '고향의 소리'이다. 1천300여 년 전 당(唐)나라 시인 하지장(賀知章)은 '회향우서(回鄕偶書)'에서 여든 훌쩍 넘어 고향 찾은 소회를 이렇게 읊었다. "젊어서 고향 떠나 늙어서 돌아오니/ 사투리는 그대로인데 귀밑머리 세어졌네/ 아이들이 쳐다보지만 서로 알지 못하고/ 웃으며 묻는다 손님은 어디서 오십니까예/~~"

20세기 중국이 낳은 세계적 석학 오경웅(吳經熊)은 시끄러운 사투리로 유명한 절강성 영파(寧波) 출신. 저서 『동서의 피안』에서 "사투리는 한평생 눌러 붙어서 아무리 표준어로 말해도 자기 고향의 어투를 드러내게 된다"고 술회했다.

어느 나라든 사투리에는 마을과 마을, 사람과 사람들이 엮어낸 전통의 숨결과 끈끈한 정과 유대감이 녹아있다. 표준어만 사용할 줄 아는 것보다 사투리까지 플러스로 구사한다면 이 또한 바이랭귀지(bilanguage) 의 능력 아닐까. 수천 년 생명력을 이어온 중국 사투리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글 전경옥 전 매일신문 논설위원 mountsinai@hanmail.net

이 기사는 계명대학교와 교육부가 링크사업으로 지역사랑과 혁신을 위해 제작했습니다.

◆다시, 사투리 연재 순서

1.왜 다시, 사투리 인가

2.예술 속 사투리

3.사투리와 사람들

4.외국의 사투리 보존과 현황

5.대담

◆사투리 연재 자문단

김주영 소설가

안도현 시인

이상규 전 국립국어원장

김동욱 계명대학교 교수

백가흠 계명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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