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 당신이 그리워 영가등 촛불 밝혀 극락전에 올렸습니다. 꽃 따라서 왔다가 꽃 따라 가는 인생길에 초대하지 않아도 오게 되고 허락하지 않아도 가게 된다는 불심의 화두에는 아미타불 앞 모란꽃잎이 석불 앞으로 후드득 지고 있네요.
46년 전 어느 봄날. 선남선녀로 찻잔을 앞에 두고 다방에서 선을 보던 자리였었지요. "처음이자 마지막 자리가 될 것입니다"라며 떨리던 당신의 첫 목소리가 잊히지 않네요. 몹쓸 병을 이기지 못해 투병 중 병상에서 물 한 모금도 허락하지 않던 앙상한 모습으로 방울토마토를 먹던 나를 따뜻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그동안 참 미안했네 이 사람아" 하던 말이 부부라는 우리의 만남과 이별로 이 세상 인연의 전부였나 봅니다.
무녀독남인 당신을 만나 5년 만에 아이 넷을 낳아 길러 시부모님 사랑을 독차지하기도 했지만, 혹독한 시집살이와 술을 좋아한 당신은 집안보다 바깥으로만 겉도는 바람에 늘 위태로운 벼랑길을 걸어갔었지요.
귀가 몹시 얇던 당신의 사업실패로 큰 집에서 작은집으로 아이넷을 데리고 이사 갔을 때, 남들 다 보내는 유치원이나 학원에도 제대로 보내주지 못한 일이 우리네 인생사에서 최악의 상황이었지요.
그때는 정말 삶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아이들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용기를 다시 얻었던 일 또한 기적이었던 것들을 잊지는 않았겠지요. 그래도 입덧이 심한 나를 위해 포장마차 냄비우동과 구시장에서 유명하다는 군만두와 소갈비를 어른들 몰래 사다 준 일들은 잊을 수 없는 따뜻한 기억들이지요. 그 덕택인지 아이들 모두 건강하게 잘 커 준 일도 감사할 일이고요.

웃음 반 눈물 반으로 바람 잘 날 없이 살아왔던 지난날들이 당신의 얼굴 위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다만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방법이 서툴러 이해한 날 보다 부대끼며 살아온 날들이 더 많았던 것 같네요.
백년해로하자던 말도, 생·로·병·사를 함께하자던 약속도 모두 헛된 말이었던가요? 염색 없는 흰 머리로 두 손 꼭 잡고 미루어 놓았던 여행이며 신시장 오일장과 마트에서 카트기를 함께 밀며 장을 보자던 약속도 말입니다. 한가지 약속도 지키지 못한 당신 참 염치도 없이 이기적이고 또 많이 아프다고 그렇게 서둘러 미리 가긴 가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는 아름답다는 나의 노후는 도대체 누구와 함께 보내라는 말인지요?
부처님 앞에 엎드려 되물어도 보지만 이미 당신 없는 이 세상이 허허로워 대웅전 앞 운판위로 흰 구름만 까닭 없이 날릴 뿐입니다. 해마다 당신과 돌계단을 세며 오르던 봉정사 영산암에 오늘은 외로이 홀로 오릅니다. 때마침 영산암 응진전에는 "벌사라불다라"나한께서 "우담바라꽃"을 피우고 계시네요. 삼천년만에 피운다는 우담바라꽃속에도 당신의 고왔던 흔적 꽃비 내려 젖습니다.
이제 아이들 모두 출가하여 손자 손녀 일곱 명으로 사위 부부 모두 합치면 16명 대가족으로 나는 어느새 제일 큰 어른이 되었답니다. 부디 아픔 없고 고통 없고 코로나 19 없고 마스크 없는 시방세계 그곳에서 사위, 며느리, 아들 딸 그리고 손주들이 늘 건강하고 행운 가득하기를 축원해 주길 바라며 당신 또한 극락왕생 길에 오르길 두 손 모아 합장합니다. 어디서 왔는지 바람이 불두화 꽃송이를 흔들고 가는군요.
오늘 당신 참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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