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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언덕] ‘오픈 프라이머리’와 ‘권리 당원’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나경원(오른쪽부터), 김은혜, 홍문표, 주호영, 윤영석, 김웅, 조경태, 이준석 후보와 김기현 당 대표 권한대행이 지난 25일 서울 마포구 누리꿈스퀘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나경원(오른쪽부터), 김은혜, 홍문표, 주호영, 윤영석, 김웅, 조경태, 이준석 후보와 김기현 당 대표 권한대행이 지난 25일 서울 마포구 누리꿈스퀘에서 열린 '제1차 전당대회 비전발표회-당 대표 및 청년최고위원 후보자'에서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광준 서울 정치부 차장대우
유광준 서울 정치부 차장대우

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

미국 주요 정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 방식이다. 대통령 후보를 당원이 아닌 일반 국민이 결정한다. 우리말로는 완전 개방형 국민 참여 경선 정도가 된다. 국내 정치에서 정당의 공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공천권을 국민에게'라는 구호와 함께 대안으로 언급돼 온 단골 처방이다.

6·11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표 경선에 뛰어든 주자들이 오픈 프라이머리를 입에 담고 있다.

김은혜 후보는 "최재형, 윤석열, 김동연 가릴 것 없이, 우리 당 주자와 함께하는 오픈 프라이머리로 꾸미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고, 김웅 후보도 "대선 승리를 위해선 당원들이 좋아하는 후보보다는 국민이 좋아하는 후보를 뽑는 게 맞다"고 말했다.

나경원 후보 역시 "예전부터 제가 국회의원 공천에서 '여야 동시의 오픈 프라이머리'를 얘기했는데 계파 종식 쪽으로 가는 길"이라고 원칙적으로 공감을 표했다.

대표가 되면 오픈 프라이머리로 내년 3월 9일 치러질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나설 당의 후보를 선출하겠다는 취지다. 유권자의 뜻을 직접 물어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내세우겠다는 의중이다.

아이러니다.

이들은 최근 (책임) 당원이 많아 경선(당원 선거인단 70%+일반 국민 여론조사 30%) 판세를 가를 대구경북을 방문해 이구동성으로 '그동안 당을 지지해 준 지역 당원들의 성원에 보답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던 인사들이다. 그런데 돌아서서는 향후 당의 대통령 후보로 누가 좋을지를 당원이 아닌 국민에게 묻겠다고 한다.

노골적으로 표현하진 않지만 당심(黨心)보다는 민심(民心)을 믿고 가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공당의 대표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정당정치의 기본을 부정하는 기이한 상황이 전개 중이다.

국민의힘 당원에 대한 모욕이다. 당원들은 시류와 세상 물정을 모르는 머저리가 아니다.

정권 교체를 위해서 무엇이 가장 시급한 과제이고 누가 적임인지 가려내는 안목은 정치적으로 훈련된 당원들이 더 잘 갖추고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매월 당비를 납부하며 당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당원들이 당을 망치는 결정을 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비현실적이다.

특히 실정을 잘 모르는 국민이 들으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를 당심만으로 결정하는 줄 오해할 수도 있겠다. 지금도 당심 50%, 민심 50%를 반영해 후보를 결정한다.

정당정치의 근간인 정치적 신의에 대한 얘기이고 당원 비중이 높은 대구경북 정치권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짚는 것이다.

오픈 프라이머리는 '게임의 법칙'이다. 차기 대선 주자들에게 유·불리로 작용하기 때문에 논의가 시작되면 각 진영 간 불꽃 튀는 공방이 불가피하다. 대선까지 남은 시간이 별로 없고 어느 때보다 당의 단결이 중요한 시점에 분열의 씨앗을 심을 필요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현재 국민의힘 대선 경선 규칙의 틀은 이른바 '박 터지게' 붙었던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내 후보 시절 어렵게 합의한 내용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당시 상황을 찬찬히 반추해 볼 필요도 있겠다.

국민의힘 최고위원 경선에 나선 김재원 전 국회의원은 최근 정견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우리 당원은 정당 행사에 머릿수 채워주는 박수 부대로 전락했다. 당원들 사기가 바닥인 상황에선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책임만 지는 '책임 당원'이 당원의 권리를 누리는 '권리 당원'이 되는 그 하나만으로도 우리 당은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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