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공원에서 실종된 후 숨진 채 발견된 고 손정민 씨의 친구 A씨 측이 29일 "A씨는 지난달 24일 오후 11시 14분쯤 손 씨와 새로 술자리를 시작한 시점부터 이튿날 오전 6시 10분쯤 한강공원에 부모와 함께 방문을 마치고 귀가하기까지 기억이 거의 없다"고 재차 주장했다.
A씨의 법률대리인 정병원 변호사(법무법인 원앤파트너스)는 이날 두 번째 입장문을 내고 "블랙아웃이 있었다는 걸 입증하란 주장이 있으나, 기억 장애 증세를 증명할 방법이 있을지 의문"이라며 "더 본질적으론 블랙아웃이 있었다는 것과 정민씨가 사망한 것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도 의문"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A씨는 ▷손 씨 실종 당일 새벽 2시18분에 목격자가 찍은 사진과 관련 진술 ▷A씨가 손 씨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던 사실 ▷A씨가 손 씨 어머니와 한차례 통화하고 만난 사실 등에 대해서도 전혀 기억이 없는 상태라고 정 변호사는 전했다.
A씨는 손 씨를 만나기 전 다른 술자리에서 청주 2병을 마셨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변호사는 "전문가들의 견해에 비춰 A군이 겪은 기억장애와 만취 상태에서의 움직임 등이 극히 이례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손 씨가 물에 들어가게 된 경위를 A씨가 알거나, 연관이 돼 있을 것이라는 유족 측의 의혹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유족은 A씨가 사건 당일과 이튿날 "손 씨가 언덕에서 신음을 내며 굴러 끌어올린 기억이 난다"는 등의 말을 했다며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정 변호사는 A씨가 ▷정민씨가 언덕에서 넘어지는 것 같은 장면과 그를 끌어올리려다 본인도 미끄러져 넘어진 기억 ▷이후 정민씨를 끌어올린 기억 등에 대해서 1차 참고인 조사 때부터 일관되게 진술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만 언덕과 강 사이 일정한 거리가 있고, A씨에게는 물에 젖은 흔적이 전혀 없는 점에 비춰 언덕 부근에서 손 씨를 끌어올린 기억과 입수는 무관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정 변호사는 'A씨가 귀가했다가 오전 5시쯤 공원에 돌아와 A씨 아버지와 함께 15분 이상 강비탈만 번갈아 오르내렸다'는 지적도 반박했다.
그는 "A씨와 아버지가 강비탈 부근에 머문 시간은 각각 7∼8분 정도"라며 "놀기 시작한 장소로 지목된 곳 주변에 손 씨가 누워 있을 것으로 생각해 둘러봤지만 발견하지 못했고, 강비탈 아래쪽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공간이 있어 혹시 그쪽에 누워 있는 게 아닌지 확인하려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변호사는 A 씨 측이 신발과 더불어 티셔츠를 버린 것에 대해서도 "2장에 만 원 정도 하는 것으로 오래 입어 낡은 상태에서 토사물까지 묻어 있어 버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 변호사은 "당시 A씨 행동이 의심스럽다는 유족의 주장은 모두 A씨가 술에 취하지 않았다는 걸 전제로 하는데 유족이 당시 A씨가 술에 취하지 않았을 거라고 무조건적으로 단정하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손 씨가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취했는데 같이 마신 친구가 취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게 상식적인지 의문"이라며 "20대 건강한 친구가 술에 만취해 잠들거나 몸을 제대로 못 가눈다고 다른 친구가 112나 119에 신고하는 게 통상적인 일인지도 의문"이라고도 했다.
정 변호사는 또 "유족은 A씨와 A씨의 가족에 대한 조사가 더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나 이미 충분한 경찰의 조사가 이뤄졌다"며 "철저한 조사에도 A씨가 고인의 사망에 작용했다는 증거는 전혀 발견된 바가 없고 오히려 A씨가 고인의 사망과 관련이 없을 것이라는 정황들만 계속 발견될 뿐"이라고 했다.
정 변호사는 이어 "지난 입장문에서 근거 없는 억측과 제기, 신상털기 등 각종 위법 행위를 멈추어 달라고 간곡히 요청한 바 있음에도 계속되고 있다"며 "부디 더는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도와주시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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