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대체불가가 된다는 것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의 신발을 관리하던 시종이었는데 추운 겨울, 신발을 옷속에 품고 있다가 따뜻하게 내놓아 감동시켰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사소한 일이라고 허투루 하지 않는 성실함이 결국 노부나가의 신임을 얻게 했고, 그의 뒤를 이어 쇼군이 되는 시작이 된 게 아닌가.

내가 근무하는 영남대병원에는 대략 십여명의 주차요원 분들이 계신다. 한참 북적일 때는 한 명만 빠져도 일대가 난리가 날 정도로 병원에 없어서는 안될 분들이시다. 사람이 많은 만큼 태도도 각양각색이다. 힘차고 절도있게 손바닥으로 막아서며 지시하시는 분이 계신가하면 한참 차량이 뒤엉켜 있는데 멀뚱히 보고 계신 분도 있다.

어느 날 작고 마른 여자분이 새로운 주차요원으로 오셨다. 그전엔 다 남자분들 뿐이었는데 그 분은 나보다도 훨씬 왜소한 체구여서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 분은 다른 분들과 차이점이 있었다. 보통 주차요원 분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지시봉을 휙휙 휘둘러서 차들을 통제한다면, 그 분은 두 손을 펴고 가지런히 모아 안내하듯이 방향을 지시하는 거였다.

처음엔 굉장히 낯설었지만 차츰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야말로, '가세요!', '서세요!' 가 아닌,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 어서 오세요~' 라고 모아진 그 두 손으로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졸리는 출근길에도 그 분의 안내를 받으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왜소한 여자 분이 힘든 주차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잠시, 그 분은 지금도 주차요원으로 계속 일하고 계신다. 그 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영남대병원에는 여성 주차요원분들이 늘어났다.

아침마다 그 분을 보면서 '대체불가'라는 말을 떠올린다. 신발을 준비하는 사소한 일에도 최선을 다했던 히데요시처럼 이름 모르는 그 분도 어쩌면 단순한 일일 수 있는 주차요원의 업무를 어떻게 하면 더 기분좋게,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어린 학생들에게 이런 얘기를 많이 한다. 성공하고 싶으면, 책임을 지는 일을 하든가, 아님 대체불가가 되라고. 대체불가가 되면 일의 종류에 상관없이 내게 선택권이 주어진다고.

사람들은 모두 대체불가가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뭔가 엄청난 일에만 그 말을 떠올리는 것 같다. 그러나 히데요시가 쇼군이 될 수 있었던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일로 대체불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주차를 하고 병원 현관으로 걸어가는 길, 나의 하루를 따뜻하게 열어주는 그 분께 팬심으로 "수고하십니다~" 라고 인사한다. 그 분께도 내가 받은 따스함을 전해주고 싶어서.

비가 온다. 내가 좋아하는 봄비이긴 하지만 우비 하나로 버티는 그 주차 요원 분이 감기에 걸릴까, 걱정되는 아침이다.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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