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잔치 비용의 선용(善用)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이인(李仁) 변호사는 대구 출신이다. 조선의 혼란기 시절인 1896년 대구 도심에서 태어나 독립운동가 숙부 이시영(李始榮·뒷날 광복 후의 부통령인 이시영과는 한문 이름도 같지만 동명이인)의 독립운동 심부름을 하는 등 일찍 항일 저항의 분위기에 익숙했다. 독립과 동포를 도울 길을 찾다 그는 변호사가 됐다.

독립운동가 관련 변호를 도맡았던 그의 삶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활동도 여럿인데, 돈이 없어 책을 내지 못하는 사람을 돕는 일도 그랬다. 그래서 그는 1938년 부모 회갑 잔치 비용인 1천200원(현재 1천만 원쯤)을 책 출판비로 대주었다. '조선문자와 어학사'(김윤경 지음)라는 책은 그렇게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그는 같은 해 오세억이란 사람에게 결혼 기념으로 400원(현재 300만 원쯤)을 전달받아 이를 노양근이란 사람이 쓴 '날아다니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책 출판에 썼다. 발간된 책 500부는 여러 곳에 배포됐다. 한발 더 나아가 이인은 여러 유지의 재정 도움을 받아 출판 사업을 하게 될 '조선기념도서출판관'이란 단체 결성에 참여, 관장도 맡았다.

변호사가 전업인 그가 출판 사업에까지 관심을 둔 까닭은 비록 나라는 망했지만 '3ㄹ'은 잃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에서였다. 즉 '말'과 '글' 그리고 '얼'만큼은 꼭 지켜야 한다는 의지였다. 이런 그였기에 국어학자가 아니면서 변호사로서 조선어학회 회원이 되고, 뒷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지옥'과도 같은 옥살이 고초도 겪어야만 했다.

사실 이인 변호사처럼 회갑 잔치 비용을 다른 뜻있는 목적에 쓴 선례는 30년 앞서 경북 성주에서도 있었다. 1907년 성주 유림 이승희(李承熙)가 환갑을 맞아 잔치 비용을 당시 나랏빚 갚는 국채보상운동 기부금으로 내는 바람에 손님과 친구들을 빈손으로 맞은 일이었다. 이는 지난 19일 경북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의 자료 공개로 밝혀졌다.

이런 대구경북의 잔치 비용 선용(善用) 사례를 떠올린 까닭은 최근 들은 소식 때문이다. 대구의 한 문인은 오래 모은 자료로 '대구 풍토기' 책을 내려다 비용 문제로 책을 못 내고 결국 세상을 떠났고, 또 다른 사람은 1천700명의 영남 인물 자료는 수집했지만 비용이 없어 손을 놓고 있다고 한다. 안타까운 마음에 혹 잔치 비용의 또 다른 선용 사례 소식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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