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재목의 새론새평] 이준석 돌풍, 가볍게 봐선 안 된다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국민의힘 당 대표 예비경선에서 '30대·0선' 이준석 후보가 1위를 차지했다. 언론에선 연일 '돌풍'이라며 대서특필이다. 과연 이 돌풍 현상이 6·11 본경선까지 갈까. 아니 더 나아가 대선으로까지 이어지는 태풍이 될까. 귀추가 주목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여야를 떠나 가볍게 봐 넘길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단 겸허히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준석 돌풍을 두고 여야 내부에서 계산법은 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예민하기는 마찬가지다. 실제 '30대·0선'으로 당 대표에 도전한 예는 국내외 정치사에서 드문 일이다. 차후 이 파장은 야당 내에만 그치지 않고, 여당, 나아가 정치 전반의 흐름으로 확대돼 지각변동을 일으킬 소지가 크다. 그만큼 여야 내부의 손익계산은 간단치 않다.

여론이 바람몰이를 한층 도와주는 가운데 이준석은 캠프 사무실도, 지원 차량도, 특별한 선거 전략도 없이 이곳저곳을 다니며 유세 중이다. 그래도 후원금은 거뜬히 채웠다. 답답한 위드 코로나의 비대면 시대에 2030세대는 디지털에 익숙하니 SNS 정치가 더 효과적인 것은 사실이나, 과연 이준석 돌풍의 근저는 무엇일까. 간단히 이 대목을 살피며 향후의 정치 판도를 가늠해 보고자 한다.

첫째, 구태의연한 정치를 향해 변혁을 외치는 2030세대의 아우성이다. 당초 국민의힘에서 젊은 피 수혈 전략은 일단 잘 먹혔다. 예상치 못한 흥행이긴 하나 결과적으로 이준석은 주연배우로 캐스팅된 셈이다. 현실 정치는 흥행이 중요하다. 대중의 이목을 끌어 민심을 얻고 최종적으로 표를 얻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흥행의 핵심은 재미인데, 어느 구석이 재미있다는 말인가. 일단 이준석이 '30대·0선'이라는 점이다. 기성 정치에 등 돌린 2030세대가 또래 30대 정치인에게 기대를 드러냈다. 아울러 그가 국회의원 당선 경력이 없다는 데 주목했다. 다선 국회의원은 경력 면에서 '낫다'고 할 수 있으나 다르게 보면 '기성-낡은-때 묻은-늙은-꼰대'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만큼 기성 정치에 대해 국민들의 피로도와 실망감은 누적돼 있다는 말이다.

둘째, 미래에 대한 2030세대의 절망감, 불안의 표출이다. '이남자 이여자'와 2030이 정치 참여로 적극 돌아선 것은 '취업은커녕, 취업 이후에도 걱정해야 하는 현실'에 절망과 불만이 쌓인 탓이다. 40, 50, 60대 기득권층은 미래가 보장돼 있다. 반면 저들은 사실 뭣 하나 가진 것도, 딱히 할 일도 없다. 취업도 대출도 결혼도 집 구입도 어렵다. 그저 막막하게 견딜 뿐이다. 정부·여당은 재난지원금 등 찔끔찔끔 돈을 풀어 응급 처방을 한다. 그런데 이런 임시방편에 2030세대가 이제 걸려들지 않는다. 더욱이 기득권층들의 불법 땅 투기와 부의 독식, 내로남불・후안무치, 아빠・엄마 찬스 같은 세습적 특권의식을 바라보는 2030의 박탈감은 정치 불신으로 이어졌다. 결국 그들은 각자도생을 위한 생존법에 눈뜨기 시작했다. SNS 소통이나 미디어를 통해 친숙해진 또래 정치인 이준석을 매개로 그들의 꿈이 실현될 것을 기대한다. 그동안 그는 좋은 스펙을 기반으로 중견 정치인들과 경합도 벌이면서 그 나름 경력을 쌓아 왔다. 또래 집단 사이에서 그는 기성의 전문가=보수=꼰대 이미지를 넘어선 신선한, 어엿한 정치인이리라. 그런데 여당에서는 이준석 같은 젊은 인물을 어른으로 부각시키지 못했다. 미숙한 정치 초년생 정도로 여겼다. 2030은 '밥을 달라!'가 아니라 '밥을 먹을 수 있는 기본 여건을 만들어 달라!'고 한다. 이준석 현상은 '젊은 피 vs 꼰대'의 대결로 구도를 잡고, 나아가 정치 전반의 세대교체론, 30・40대 젊은 대통령 프레임으로 물꼬를 틀어 갈 수 있다. 낡은 관습・체제(앙시앵 레짐)를 고집할 여야 정치권의 시한도 머지않다는 느낌이 든다.

셋째, 위드 코로나 시대에 디지털 세대의 SNS 정치가 오히려 유효하다는 논증이다. 4명 이상 만날 수 없고, 단체 모임이 불가능한 상황에 대면 정치는 한계가 있음을 이준석은 잘 비집고 들었다. 그가 팬덤을 어떻게 시스템화하고, 나아가 야권의 보수 정권 통합을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지금은 돌풍 자체에 주목하고 숨은 정치적 문법부터 살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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