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만든 공간(유현준 글/ 을유문화사/ 2020년)
필자는 문화예술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고 공개해 문화예술의 역사를 기록, 기억하기 위해 만들진 팀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 팀은 아카이브 공간을 통해 사업의 의미를 잘 알고 자료를 내어주신 원로 예술인들에 대한 감사와 그 위에 지워진 책임감, 또 이것을 어떻게 시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보여줄 것인가가 큰 고민거리였다. 그렇게 의미를 담은 공간 구축의 방법을 찾던 중 '공간이 만든 공간'을 만나게 되었다.
저자 유현준은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이고 ㈜유현준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사다. 청와대 리모델링 자문과 대한민국 건축대전 심사위원,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부커미셔너를 비롯한 각종 위원을 역임했다. 그는 자연과 인간 중심의 건축 철학과 건축의 역사 등을 여러 저서와 강의를 통해 쉽게 소개하고 있다.
공간은 인간의 의지와 활동의 흔적으로 채워지는 곳이자 인간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기도 하다. 책의 시작은 환경적 제약을 넘어서기 위한 인간의 물리적 해결책이 건축이라는 전제를 제시한다. 처음엔 공간, 건축에 대한 구체적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책을 펼쳤지만 우주의 생성부터 시작해 건축의 원류를 탐험하는 방대한 시공간의 여정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왜 건축물의 빈 공간을 보아야 하는가 하는 첫 장에서 시작, 가상 신대륙의 시대를 거쳐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등 닫는 글까지 세계사, 동양과 서양의 문화, 철학과 과학을 넘나들며 공간의 미래까지 내다보고 있다. 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발생하고 서로 다른 생각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융합되고 어떻게 생각의 새로운 종이 만들어지는지 추리한다.
특히 3장 '농업이 만든 두 개의 세계' 중 비움의 가치 편에서 풀어내는 '비움'과 숫자 '0'의 의미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인도인에게 0은 창조이자 파괴이며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만 인식하지 못하는 수로 인식하고, 동양에서 비움은 새로운 창조의 준비로 여겨진다고 설명한다. 서양의 문화는 규칙의 반복을 통해 공간을 만들어 간다면 동양에서는 자연과 조화한 비움의 관계로 건축문화를 이뤄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일상의 변화와 문화예술의 변화는 이 가상공간을 중심으로 융복합의 플랫폼 형성이 가시화되리라 예상한다. 더불어 아날로그의 생활방식에 대한 뉴트로도 예상된다고 소개한다. 이 책은 우리가 사는 공간을 점점 유기체라는 사실과 갈등을 화합으로 이끌어가는 창조적 영감을 통해 새로운 인간다움의 정의를 찾아가면서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가야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공간이 만든 공간'을 읽고 새로운 생각은 결국 이해와 공감, 그리고 수용에 의해 생겨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건축 문외한인 나에게 이 책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새 시대를 연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 르 코르뷔지에 등의 건축가들과의 만남을 이어준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 팀이 고민하고 있는 공간에 대한 구체적 구현방법은 찾아내지 못했지만 창조, 개척 정신으로 지역 예술인들이 일궈낸 역 문화예술을 시민들과 다시 만나게 하는 우리 팀의 수고와 열정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남지민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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