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엘라 드빌은 사악한 캐릭터의 대명사다.
귀여운 달마시안 강아지의 모피로 코트를 해 입고, 악당 재스퍼와 호레이스를 거느리며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는 악녀다.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패션에 클래식한 팬더 드빌 자동차를 몰고 질주하기도 하는 엄청난 부의 소유자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1961)에서 묘사된 크루엘라 드빌이다. 과연 그녀는 어떻게 부자가 됐고, 달마시안과는 어떤 악연이 맺어진 것일까.
1961년 애니메이션의 프리퀄(그 전의 일을 그린 속편)이라고 할 '크루엘라'(감독 크레이그 길레스피)가 그 이야기를 풀어낸다. 경쾌한 연출에 매력적인 서사, 여기에 화려한 의상과 감각적인 음악이 더해 땅 속에 묻혀있던 크루엘라 드빌을 스크린에 살려냈다.
에스텔라는 어릴 때부터 보통 아이들과 달랐다. 개성이 강했고, 특히 패션 감각이 뛰어났다. 엄마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녀를 이해하는 따뜻한 후원자였다. 그러나 그녀의 잘못으로 엄마가 죽자 에스텔라는 런던으로 와서 재스퍼와 호레이스를 만나 좀도둑질로 살아간다.
마침내 어른이 된 에스텔라(엠마 스톤)는 꿈에 그리던 리버티 백화점에서 일하게 되면서 런던 패션계의 폭군인 남작부인(엠마 톰슨)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에스텔라 속에 갇혀 있던 파괴적인 DNA가 살아나 크루엘라로 폭발한다.
'크루엘라'는 억압받고 상처입은 '내면아이(inner child)'가 도발적인 인격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서사로 잡고 있다. 에스텔라가 크루엘라로 면모해가는 탈각의 변화다. 별처럼 맑고 깨끗한 에스텔라(Estella)가 사악한 크루엘라(Cruella)로 역성장하는 것이지만, 고담시의 광대 아서가 악당 조커로 변모하는 과정처럼 드라마틱하고 강렬하게 관객을 끈다.
'조커'에서 아서를 도발하는 것이 머레이(로버트 드 니로)라면 '크루엘라'에서는 남작부인이다. 그녀는 런던 패션계를 쥐락펴락하는 사이코패스다. 주변의 모든 인물이 그녀의 화려한 불꽃에 희생되는 나방과 같은 존재로 에스텔라도 마찬가지다. 바닥청소나 하던 에스텔라가 술을 마시고 쇼윈도를 마음대로 뜯어고치면서 그녀의 눈에 띈다. 패션을 향한 꿈이 이뤄지나 싶지만, 남작부인에게 에스텔라는 그저 소모품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 자신이 아니라 남작부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에스텔라는 분노의 화신으로 변하고, 그녀의 패션쇼를 자신만의 코드로 부숴나가기 시작한다.
이 서사의 흐름을 이끄는 것이 세 캐릭터의 충돌이다. 에스텔라와 크루엘라, 그리고 남작부인이다. 순수와 사악함, 그리고 마성의 대결이고 이를 비주얼로 보여주는 것이 패션이다. 크루엘라의 흑백 헤어컬러와 붉은 색의 강렬한 드레스 등 '크루엘라'는 이미 색감으로 스크린을 흠뻑 적신다. 남작부인이 50년대 고전적인 디오르풍이라면, 에스텔라는 70년대 전위적인 스타일로 맞바람을 놓는다.
여기에 그래피티 아트로 유명한 뱅크시와 장 미셀 바스키아 풍의 캘리그라피가 더해지면서 시대와 공간을 파괴하는 크루엘라의 테러 본능을 잘 묘사하고 있다.
특히 관객을 매료시키는 것은 70년대를 휘감았던 팝이 적재적소에 배치돼 크루엘라의 심정을 잘 대변해주는 것이다. 헬렌 레디의 'I am Woman',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 데보라 해리의 'One Way or Another' 등이 쉴 새 없이 스크린의 화려한 캔버스 색 위에 드레싱처럼 뿌려진다. 레드 제플린, 퀸, 비지스, 도어스, 비틀스 등의 명곡도 튀어나온다. 크레이그 길레스피 감독은 2천여 곡을 후보로 골라낸 뒤 그 중에 50여 곡을 선택, OST를 완성했다고 한다.
'엠마 대 엠마'로 화제가 된 두 배우 스톤과 톰슨의 연기도 뛰어나다. 특히 엠마 스톤의 발랄한 악마성은 그동안 크루엘라 드빌이 가지고 있던 음습함을 깨며 스타일리시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101마리 달마시안'을 본 관객이라면 '크루엘라'를 훨씬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 크루엘라가 팬더를 몰고 달리는 장면의 얼굴 숏, 재스퍼(폴 월터 하우저)와 호레이스(조엘 프라이)의 절묘한 싱크로, 마침내 '드빌'이라는 성을 가지게 되는 장면 등에 무릎을 치게 된다.
'크루엘라'는 애니메이션의 명가 디즈니의 DNA가 잘 발현된 실사영화다.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들의 귀여운 앙상블과 서사의 비주얼, 이를 더욱 맛깔나게 해주는 음악 등이 디즈니의 염색체를 풍성하게 자가 분열시킨다.
특히 '101마리 달마시안'과 이어주는 돌다리와 같은 쿠키 영상을 놓치면 찰떡을 놓친 팥빙수가 된다. 그리운 그 이름이 나온다. 133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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