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상헌 기자의 C'est la vie] 윤재호 주광정밀 대표·구미상의 회장

자수성가 CEO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꾸준히 실천
"18세 때 취직 후 밥 마음껏 먹게 돼 행복했지요"
"배고픔의 서러움 알기에 아낌없이 나눌 수 있죠"

'명장' 출신 CEO로서 지난 4월 구미상공회의소 회장에 취임한 윤재호 주광정밀㈜ 대표는 어려운 이웃을 도울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구미상공회의소 제공

요즘 우리 사회를 비꼬는 뜻으로 '부모 찬스'란 표현이 자주 쓰인다. 아빠나 엄마가 자신들의 돈이나 권력으로 자녀의 사회적 삶에 영향을 미치는 세태를 일컫는다. 이같은 불공정은 사회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와도 거리가 멀다.

자식을 아끼는 마음은 본능인 만큼 부모 찬스가 없는 세상은 당최 불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 일어나기 전만 해도 그런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최근 구미상공회의소 회장에 취임한 윤재호(55) 주광정밀㈜ 대표 역시 그랬다.

전국청송군향우회연합회장도 맡고 있는 그의 고향은 2019년 행정구역 명칭이 부동면 이전리에서 주왕산면 주산지리로 바뀌었다. 지금이야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주산지는 그가 부동중학교를 다닐 때만 하더라도 이름도 없는 동네 저수지에 불과했다.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 잡고 더덕 캐러 다니던 게 8남매의 막내였던 그의 일과였다.

"형편이 넉넉지 않다 보니 끼니를 건너뛸 때가 많아 고교 시절 키 176㎝에 몸무게가 52kg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18살에 취직한 뒤 회사에서 공짜로 마음껏 밥을 먹게 됐을 때 느꼈던 행복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저희 사내식당에 돈 아끼지 말라고 늘 당부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죠."

우리 사회, 특히 정치권을 겨냥한 비판 중에는 '자기 돈이면 그렇게 하겠냐'는 말도 있다. 하지만 자기 돈이라 하더라도 이웃의 행복을 위해 흔쾌히 쓰는 사람은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윤 회장은 '별난' 사람이다. 정확한 액수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거액을 지역사회에 기부해왔다. 그는 배고픔의 서러움을 잘 알기에 오히려 아낌 없이 나눌 수 있는 것이라며 겸손해 했다.

"2015년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경북 37호)이 됐습니다. 이후 돈이 모일 때마다 조금씩 더 냈더니 총 11억원쯤 됩니다. 대구경북에선 가장 많은 수준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제가 사회에서 받은 도움에 비하면 아직 부족합니다."

경북기계공고를 졸업한 윤 대표가 1994년 창업한 주광정밀은 한국을 대표하는 강소기업 가운데 하나로 2016년 천만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휴대폰부터 자동차부품에 이르기까지 흑연(黑鉛) 제품 가공 분야에서 독보적 기술력을 갖춰 연간 매출이 1천400억원에 육박한다. 그 자신도 2012년 기능한국인 제70호, 2016년 대한민국 명장(컴퓨터 응용가공)에 선정됐다.

엔지니어 출신 CEO답게 후배 기술인 양성은 그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일이다. 2012년 마이스터고 장학회를 설립해 저소득가정 기술 영재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고, 주광정밀에 입사하는 한국폴리텍대학 졸업생에겐 격려금을 지급한다. 8년간 총동회장을 맡았던 경북기계공고에는 지금까지 장학금 8억원을 전달한 데 이어 올 하반기 완공하는 다목적교육관 설립 기금으로 20억원을 기탁했다.

"고교 후배들이 단체로 보내온 감사 편지를 읽다 보니 정말 가슴 뭉클하더군요. 춥고 배고팠던 제 학창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더 나은 선배가 되어야겠다는 책임감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이 가진 것은 뛰어난 인재뿐입니다. 후배 기술인들이 열정을 불사르고 싶은 회사, 세계 최고의 꿈을 키워나가는 기업이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물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격언처럼 소리소문없이 주변을 돕는 일도 많다. 십여 년 전부터 구미지역 저소득가정과 사회복지시설을 정기 후원하고 있고, 올해 3월 구미 도개면 동산리 소재 장애인 단기거주시설 '사랑의 쉼터' 개관에 적지 않은 보탬을 전했다. 그는 이같은 공로로 지난해 기획재정부로부터 '아름다운 납세자' 표창을 받았다.

"젊은 시절 한때 노동운동에 심취했더랬습니다. 고교 졸업 뒤 다녔던 대기업에서 퇴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고요. 근로자에 대한 배려가 있는 회사를 내가 만들어보자는 마음에 단돈 2천만원으로 겁도 없이 창업했습니다. 모두가 열심히 살면서 가끔씩은 주위 사람도 챙기면 우리 사회가 더욱 건강하고 부강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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