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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국민의힘 전당대회, 즐기면 된다

노동일 경희대 교수

지난 3일 오후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지난 3일 오후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2021 국민의 힘 1차 전당대회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당대표 후보들이 인사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지난주 매일신문에 실린 진중권 전 교수의 글을 읽었다. 국민의힘이 딜레마에 빠져 있는데, "이준석이 낙선하면 '역시 저 당은 구제 불능'이라는 얘기를 들을 것이고, 그가 당 대표가 되면 그 당은 정말로 구제 불능이 된다"는 요지이다. 그의 팬이기에 근본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같은 현상을 봐도 진 전 교수와 생각을 달리하는 부분이 있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진 전 교수의 말처럼 국민의힘이 딜레마에 처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 딜레마를 반대로 해석한다. 이준석이 당 대표가 돼도 좋고, 낙선해도 좋다고. 물이 절반 남짓 담긴 병을 보고 반밖에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반이나 남았다고 할 수도 있다.

한 가지만 질문해 보자. 이준석이 당 대표에 도전하지 않았거나 출마했어도 미풍에 그쳤다면 국민의힘 형편이 지금보다 더 좋았을까. 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진 전 교수도 아니라고 답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처럼 조용히 그들만의 리그로 끝날 전당대회였다. 집권 여당의 전당대회조차 그렇게 익숙한 모습이 아니었던가. 2030세대의 관심은 언감생심이요, 국민 여론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시 저 당은 구제 불능'이라는 평이 주를 이루었을 게 분명하다. 그러니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이준석과 국민의힘은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이준석이 당 대표가 돼도 좋고, 낙선해도 좋다. 이준석 당 대표는 '현재의 변화'를 상징하고, 간발의 차로 낙선한다면 '미래의 변화'를 예약한 게 되니 말이다.

이준석 돌풍은 물론 이 후보 개인에 대한 지지만은 아니다. 정치권에 대해, 야당을 향해 '변화'를 촉구하는 국민의 독려가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흥행 몰이 또한 영남당 이미지를 가진 정당에서 '호남의 딸'을 내세운 조수진 의원 등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 큰 몫을 한 결과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독선과 독주, 무능과 내로남불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왔다. 조국 사태 후폭풍 속에 치러진 2020년 총선도 숱한 헛발질과 추태로 자멸한 기억이 생생하다. 나경원 후보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지난 대선 역시 야권 분열로 승리를 헌납한 결과였다. 윤석열이 국민의힘에 들어오고 후보 단일화만 하면 이런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까. 역시 아니라는 답은 분명하다. 윤석열 현상 역시 이준석 돌풍과 같이 문재인 정부의 실정이 낳은 반문 현상의 결집이다. 윤 전 검찰총장 개인의 역량으로 구축한 지지율이 아니다. 국민의힘에 입당해도, 입당하지 않아도, 검증 과정에서 말 한마디 잘못해도, 지지율은 출렁일 수 있다. 윤석열은 물론 누구라도 안착할 수 있는 플랫폼을 야당이 만들어 내지 못하면 국민의 정권교체 열망까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거창하게 시대정신이라는 말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현재 상황에서 야당에 바라는 국민적 요구가 변해도 크게 변하는 것이라면 그에 부응하는 게 정치인과 정당의 덕목이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영국 보수당의 역사'에서 영국 보수당이 생존할 수 있었던 핵심 요소로 '보수'가 아닌 '변화'를 꼽는다. 질서와 안정, 제도와 유산을 지키면서 시대가 원하는 변화를 수용했던 유연함이 생존 비결이라는 분석이다. "보수당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토리에서 시작된 보수당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변화를 읽고 그것을 수용하면서 생존의 기술을 터득하고 국민이 원하는 정책 대안들을 제시해왔다. 이념과 사상에 경도되지 않고 현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실용적 기회주의'야말로 보수당이 유효한 정당으로 생존해 올 수 있었던 핵심 덕목이었다."

변화의 에너지와 가능성을 보여 준 보수 정당의 11일 전당대회는 축제로 치러져야 한다. 모든 후보들이 국민의 변화 요구를 기꺼이 수용하겠다고 선언하면 된다. 누가 되든 함께 그 변화의 주체가 되겠다고 다짐한다면 상대를 비난하느라 얼굴을 붉힐 이유가 없다. 솔직히 말해 이준석 하나에 흥망이 달린 정당이라면 그게 생존할 가치가 있는 당인가 말이다. 그러니 이준석이 당 대표가 되어도 좋고, 낙선해도 좋은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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