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사람을 바꾼다. 공간이 바뀌면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고, 그것들이 쌓여 사람이 바뀐다. 공간이 삶과 미래를 바꾼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게 공간이 가진 힘이다. 반대로 사람의 욕구가 공간의 쓰임새를 바꾸기도 하고, 그렇게 변한 공간에서 사회현상을 살필 수 있다. 사람과 공간이 서로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다.
공간은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꾼다. 성냥갑처럼 별 차이 없이 규격화된 공간, 무채색으로 도배된 곳이란 인식을 넘어 학교 공간을 '다양하게'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는 이유다.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고 창의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학교 공간을 다양하게 꾸미려는 작업이 시도되고 있다. 학교 공간 혁신 사업 사례와 진행 방향 등을 짚어봤다.
◆쾌적한 다목적 공간으로 변신, 혜화여고 도서관

'차분하다. 그런데 다소 무겁고, 답답하다.' 오래 된 학교 도서관 중에선 이런 느낌을 주는 곳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이곳은 다르다. 도서관인데 도서관같지 않다. 밝고 화사하다. 카페와 같은 분위기도 살짝 묻어난다. 다만 은은한 파스텔 색조를 활용해 들뜬 느낌을 주진 않는다. 최근 찾은 대구 혜화여자고등학교(교장 배우절)의 도서관 얘기다.
올해 2월 혜화여고 도서관은 새 옷을 갈아 입었다. 30년이 훌쩍 넘은 건물 속 공간답지 않게 산뜻해졌다. 서가가 있는 자료실보다는 도서열람실 쪽이 변화가 더 크다. 도서열람실은 책을 보는 것 외에도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는 공간이 됐다.

유리로 된 접이식 문(폴딩 도어)를 두 군데 설치해 개방감을 살리면서도 필요한 경우 문을 닫아 공간을 구분할 수 있게 했다. 독서와 학습을 방해하지 않고도 옆 공간에서 모둠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천장에 매립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대형 TV를 갖춰 강의실로도 활용할 수 있다.
공간을 바꾸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수차례 워크숍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교사들의 생각도 모였다. 그리고 도서관이 변신했다. '오래되고 낡아 색이 바랜 곳', '책상 간격이 좁아 이동하기 불편한 곳'에서 '마음 편히 앉아 잠시 쉴 수 있는 공간', '상쾌한 기분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학생회장인 조민현(3학년) 학생은 "통유리창이 생겨 쾌적한 분위기가 됐다. 계단에 앉아 책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했는데 잘 반영돼 반갑다"며 "학생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돼 더 정이 가는 공간이다. 완성된 모습을 보면서 다들 힘차게 박수를 쳤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열람실 한쪽 끝 벽은 계단식으로 꾸며졌다. 계단 곳곳엔 쿠션을 깔아 편히 앉아 책을 읽고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했다. 계단 위쪽 벽엔 필기구로 쉽게 쓰고 지울 수 있는 유리 칠판을 설치했다. 열람실 곳곳엔 전기 콘센트를 배치, 스마트기기를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했다.
학교 바깥 풍경이 보이는 쪽 벽면엔 불투명 유리창을 달았다. 그 반대편은 커다란 통유리창들을 설치, 창문 너머로 나무가 우거진 교정이 보이게 했다. 시선과 관심, 생각과 정서가 학교 안으로 모이도록 한 시도라는 게 학교 측의 설명이다.
여경환 교감은 "깨끗하고 상쾌한 분위기여서 아이들이 이곳을 좋아한다. 실내 색깔부터 공간 구성에까지 학생들이 머리를 맞대 탄생한 공간이다"며 "특히 교정이 보이는 통유리창은 인기가 좋다. 아이들이 사진을 찍어 개인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한다"고 했다.
◆학교 공간 혁신, 미래 학교로 가는 길
'공급자 중심의 획일화된 학교 공간'을 '다양한 수업과 놀이, 휴식이 가능한 창의적, 감성적 공간'으로 바꾼다. 교육부가 2019년부터 추진 중인 '학교 공간 혁신 사업'의 정의다. 무엇보다 사용자인 학생과 교직원이 직접 공간 디자인과 설계 과정에 건축 전문가와 함께 참여하는 게 핵심이다.

대구시교육청을 비롯해 각 시·도교육청도 자체적으로 미래 교육과정에 맞는 교실과 공간을 구축하려는 시도를 이어왔다. 대구시교육청만 해도 2018년부터 초등 미래교실 리노베이션 사업(18개교), 중·교교의 유휴교실과 복도 등 공간을 활용하는 미래 교육공간 구축 사업(24개교)을 시작했다.
현재는 각 교육청의 자체 사업과 교육부의 학교 공간 혁신 사업이 통합, 추진되고 있다. 교육부는 올해까지 3년간 1조2천400억원을 이 사업에 투자했다. 대구에선 2019년 6개 유치원과 특수학교 및 특수학급(39개교)에 공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2020년엔 초교 놀이공간 조성, 도서관 현대화 등 96개교의 공간이 바뀌었다.
특히 초등학생들은 놀면서 배운다고 한다. 그런 만큼 초등학교는 학습과 휴식뿐 아니라 놀이도 중심에 둔 공간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물론 변화 과정에서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의 의견이 잘 반영되는 게 중요하다. 대구 신월초등학교(교장 김희자)와 진월초등학교(교장 백경숙)의 환경이 바뀌는 과정도 그랬다.
신월초교에서 바뀐 공간은 도서관과 도서관 앞 복도. 도서관 책들이 정리된 서가 사이엔 웅크리고 앉아 책을 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4명이 앉을 수 있는 책상도 갖춰졌다. 도서관 앞 복도는 놀이 공간으로 조성됐다. 알록달록한 색깔이 곳곳에 입혀지고 계단 아래엔 다락방 분위기로 꾸민 공간, 연필과 동굴을 묘사한 구조물, 포토존도 설치했다.

진월초등학교의 1학년 교실 3곳도 달라졌다. 교실 앞면엔 온·오프라인 수업이 가능한 TV, 이동식 칠판이 설치됐다. 교실 뒷편은 더 많이 변했다. 계단식 무대와 게시 공간이 들어섰고, 벽면엔 붙박이 수납장도 생겼다.
진월초교 교사들도 이런 변화를 반긴다. 이곳 1학년 담임교사들은 "다양한 색채를 활용해 활기차고 밝은 분위기로 교실이 꾸며졌다. 그 덕분에 유치원을 막 졸업하고 온 1학년 아이들이 낯선 학교생활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또 "그동안 잘 활용하지 못한 교실 뒷편이 수업과 놀이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된 것도 반갑다"고들 했다.
학교 공간 혁신 사업은 올해도 이어진다. 시교육청은 2022년 이 사업 참여 학교 39곳을 선정, 사업 예산으로 총 62억원을 지원한다. 물론 이번에도 설계 과정부터 학생과 교사 등 사용자가 건축 전문가와 함께한다. 교육부가 지난해 7월 밝힌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사업계획'에도 이 사업이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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