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버스를 탔던 아버지와 딸, 한순간에 부녀의 생사가 갈릴만큼 사고는 순식간에 벌어졌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어렵게 가게를 꾸려오던 어머니는 장 보러 간다고 나선 이후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쉬는 날 학교에 후배들을 보러 외동아들 역시 집 밖을 나서는 뒷모습이 차마 마지막일 줄 몰랐다.
9일 발생한 광주 동구 재개발지역 철거 건물 붕괴 사고로 사망한 버스 승객들의 사연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참사를 당할 줄 꿈에도 모르고 사고 당일까지 열심히 살아가는 소시민들이었다.
희생자 9명 중 4명이 이송된 광주 동구 조선대병원. 10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사고 당일 오후 A씨(29)의 시신이 안치된 이 병원 응급실 앞에서는 가족들이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집안 막내딸인 A씨는 아버지와 나란히 버스에 올랐다가 변을 당했다. 버스 앞자리에 앉은 아버지는 사고 직후 구조돼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했지만, 버스 뒤쪽에 있다가 뒤늦게 구조된 딸은 결국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이날 소방당국 브리핑 결과 붕괴 건물의 콘크리트 잔해물이 시내버스를 덮칠 당시 인도에 심어진 아름드리 나무가 완충작용을 해 전면부가 후면부에 비해 덜 손상된 것으로 확인됐다. 콘크리트 잔해물이 그대로 덮친 버스 후면부는 크게 손상돼 뒤쪽에 탄 9명은 모두 사망했지만 앞쪽에 탔던 8명은 아름드리 나무가 막아줘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받으며 화를 면한 것이다.
아버지는 의식을 찾은 뒤에도 계속해서 딸의 안부를 물어본 것으로 전해졌다. 아버지가 입원한 광주 남구 광주기독병원 직원은 "환자가 의식을 회복하자 '우리 딸은 괜찮으냐'고 계속 물어봤는데, 당시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 대답을 못 했다"고 말했다.

A씨는 부모와 떨어져 살고 있다가 이날은 본가에 방문하는 길이었다고 한국일보는 전했다. 딸의 시신을 확인한 백발의 어머니는 "이렇게 갈 거면 공부를 왜 그렇게 열심히 했어. 우리 막내딸 못 지켜줘서 미안하다"라고 오열했다. 다른 유가족은 "평소 공부를 열심히 하던 착한 막내딸이었다. 오랜만에 집에 온다고 그렇게 좋아했는데"라고 한탄했다.
사망자 B씨(65)의 남편은 병원 장례식장 앞에 멍하니 서서 "불쌍한 아내"라며 흐느끼고 있었다. B씨는 지난해 초 친척에게 식당을 넘겨받아 장사를 시작했다. 그때가 하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직전이라 장사는 여의치 않았다.
사고 당일 B씨는 다음 날 점심 장사 때 내놓을 반찬거리를 만들려고 근처 말바우시장에 갔다가 자택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가족들은 B씨가 매몰된 버스에 탔을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B씨 남편은 잠깐 장을 본다며 나간 아내가 3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급히 찾아나섰던 차에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사고 20분 전에 B씨와 짧은 통화를 했다는 아들은 "김치 담근다고 마늘을 까놓고 나가셨더라"고 흐느끼듯 말했다. B씨가 끝내 돌아오지 못한 집은 사고 현장과 고작 두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한 가족은 "천사처럼 착한 사람이 이제 뭘 해보려고 하는데 이런 변을 당했다"며 "이건 살인이나 다름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번 참변의 최연소 사망자 C군(17)의 부모도 주저앉아 오열할 수 밖에 없었다. 평소 버스 뒷좌석에 앉길 좋아했던 C군은 학교 가는 버스에 올랐다가 참변을 당했다. 이날은 비대면 수업이 진행된 날이라 등교할 필요가 없었지만, 동아리 후배들을 챙기러 일부러 나선 길이었다. C군의 부모는 "늦둥이 우리 아들… 이렇게 될지 꿈에도 몰랐다"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D씨(64)는 큰아들 생일날 숨졌다. 광주지법 인근 곰탕집에서 일하는 D씨는 사고 당일 아들을 위해 미역국을 끓여놓고 급하게 집을 나섰다. 힘든 내색 한번 없었던 그를 시신으로 확인한 유가족은 말문이 막힌 듯 고개를 숙였다. 시누이 조모(64) 씨는 "그래도 사고 전에 큰아들과 통화를 했다고 하더라. 그게 모자의 마지막 인사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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