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잘 못 키우는 편이다. 뭔가 잘 만들어내는 사람을 '금손'이라 부르고 반대로 잘 망치는 사람을 우스개로 '똥손'이라 하던데 그렇게 친다면 나는 '식물똥손'에 가깝다.
하지만 꽃집을 지나다 예쁜 식물을 보면 어김없이 마음이 움직이고 이번에는 잘 키워보겠다 다짐하며 영화 '레옹'의 마틸다처럼 비장하게 화분을 안고 온다. 물도 잘 주고 나름 신경을 써보지만 한 해를 넘기기 힘들다. 선물 받거나 사온 식물들이 죽으면 모종의 죄책감마저 느끼면서 이런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요즘 식물 공부를 하는 중이다.
예전에는 식물에 대해 잘 몰라도 물만 잘 주면 살겠거니 했지만 이제는 식물을 데려오면 인터넷 검색부터 한다. 키우는 사람들이 블로그에 올린 글을 찬찬히 읽어보고 유튜브에서 영상들을 찾아본다. 그렇게 서너 개의 자료만 훑어봐도 유경험자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맥락을 보며 식물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찾아보니 키우고 있는 식물마다 제각각 존중해줘야 할 개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동안 그걸 무시하고 마음대로 키웠을 뿐.
왠지 식물은 햇빛을 많이 볼수록 좋을 것 같고 물도 자주 주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식물마다 취향이 천차만별이다. 음지를 좋아하는 식물과 양지를 좋아하는 식물, 물을 좋아하는 식물과 그렇지 않은 식물이 있다. 한여름 땡볕에 광합성 많이 하고 쑥쑥 크라고 일부러 화분을 내놓았다가 예쁘게 키운 알로카시아 잎이 다 타들어간 적도 있고 물을 안 좋아하는 다육이에게 꾸준히 물을 주다 뿌리가 썩어버린 적도 있다.
꽃도 다 다른 시기에 핀다. 봄에 피는 식물도 있고 겨울에 피는 것도 있고, 꽃이 피는 건지도 몰랐다가 몇 년 만에 꽃을 보기도 한다. 또 죽은 것처럼 보이는 식물도 부활할 수 있다는 것, 오래된 가지들은 정리해주면 훨씬 잘 자랄 수 있다는 것, 실내에서 키우는 식물들은 채광만큼이나 통풍이 중요하다는 것 등등 시행착오를 겪으며 식물을 키우는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경우의 수들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식물의 세계에 눈을 뜨면서 배우는 것은 비단 식물의 삶뿐만이 아니다. 식물을 건강하게 키우는 방법에 빗대어 내 삶을 건강하게 하는 방법을 더 많이 배워간다. 본질적으로 인간도 식물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밝고 외향적인 사람이 있는 반면 음지식물처럼 수줍음이 많고 어두움이 편안한 사람도 있다. 어릴 적에 재능을 꽃피우고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지만 뒤늦게 꽃이 피는 사람도 있고, 꽃이 핀 자리에 열매를 맺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식물로 보자면 이는 옳고 그름, 성공과 실패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일어날 수도 있는 경우의 수일 뿐이다. 각자 자기에게 적당한 방식이 있고 때가 있다.
작년 겨울, 6년을 키운 해피트리가 잎을 다 떨구고 비실거렸다. 좀 아까웠지만 톱으로 윗가지들을 몽땅 잘라주었더니 얼마 전부터 잘린 가지 끝에서 새순이 샘솟듯 터져 나온다. 잘려나간 높이보다 더 크고 풍성하게. 폭풍 성장하는 해피트리를 바라보며 내가 잘라내지 못한 내 안의 묵은 가지들을 생각해본다.
여전히 식물을 잘 키운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식물똥손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시간이 더 흐르면 금손까지는 못가더라도 금은동의 동손, 식물동손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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