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보수 철학’ 세워야 할 TK

이권효 계명대 특임교수

이권효 계명대 특임교수. 동양철학박사
이권효 계명대 특임교수. 동양철학박사

'보수의 심장'이라고 하면 대부분 TK(대구경북)를 떠올린다. 최근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처럼 전국적 선거 때면 '보수 심장 TK'라는 표현이 언론에 많이 등장한다.

보수의 심장이라는 표현은 어색하다. 심장은 가슴 뜀이고 생동적이며 진취적인 모습의 상징이다. 이에 비해 보수는 한국 사회에서 대체로 부정적인 느낌이나 이미지가 강하다. 대학생들에게 보수에 대해 질문하면 거의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당신은 보수적인 사람이다"라는 말을 들으면 어떻느냐는 물음에는 불쾌함을 넘어 무시당하는 기분이라는 대답이 대부분이다. 보수는 당당함이나 호감과는 거리가 멀다는 분위기가 깊이 놓여 있다. 보수에 대한 이 같은 인식은 심장의 상징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보수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인식이 강하다 보니 '따뜻한 보수' '개혁 보수' '합리적 보수' '젊은 보수'같이 꾸미는 말을 붙이는 경우가 생긴다. 반대로 '낡은 보수' '꼰대 보수' '수구 보수' 같은 표현도 나온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 같은 꾸밈말을 붙인다고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모두 보수라는 말을 훼손하는 비정상적 표현일 뿐이다.

선거 때면 후보자들은 앞다퉈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갑작스러운 애정을 드러낸다. TK 지역의 '표'를 얻기 위해서다. 이런저런 공약을 쏟아낸다. 선거가 끝나면 흐지부지 멀어진다. 지역에서는 여야 정치권을 향해 배은망덕, 토사구팽, 고립무원 같은 서운함과 상실감을 뿜어 낸다. 정부와 정치권은 TK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언론은 이를 'TK 달래기'처럼 표현한다. 선거 전후로 되풀이되는 공허한 풍경이다.

이 같은 현상은 보수의 심장에 맞는 철학(바탕이 되는 가치), 즉 알맹이를 TK가 보여 주지 못하는 이유가 크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수라는 말의 의미와 인식을 명확하게 하는 첫 단추를 끼우는 게 필요하다.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은 보수를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함'으로 풀이한다. 보수의 심장이라는 TK가 이 같은 의미에서 보수의 중심 지역이라면 이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대학생들도 이런 지역에서 삶을 설계하려는 자신감을 갖기 어렵다.

보수의 '보'(保)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보(保)는 부모가 아이를 등에 업고 키우는 모습이다. 여기서 '기르다, 돕다, 안정시키다, 믿고 의지하다'는 의미가 나온다. 아이를 낳아 바르게 양육하는 일보다 소중한 것이 있는가. 보수는 이런 일상의 소중함을 지키고 성장시키는 태도와 노력이다. 중도 실용적이고 진취적이며 미래 지향적이다. 중도는 이념적 가운데가 아니라 일상 현실의 역동적 균형감이다. 모두 보수라는 말에 본디 들어 있는 의미이고 가치이다. "퇴계 이황은 평생 향상심이 있었다"는 기록은 보수의 본디 의미와 통한다.

보수라는 말에서 변화를 싫어하는 답답함이 아니라 아이를 잘 키우는 태도와 노력이 떠오르도록 만드는 것은 엄청난 인식 전환이다. 명칭이 바르면 현실도 바뀐다. 공자도 명칭의 뜻을 바르게 하는 정명(正名)이 세상일의 핵심이라고 했다. 보수의 본디 의미가 TK에서 바르게 돼 국어사전의 풀이를 바꾸면 보수의 정상화에 구체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TK에서부터 보수라는 말을 일상에서 당당하게 쓴다면 '보수 정명의 나비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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