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조금만 더 엄마 말에 귀 기울였다면 하는 후회, 그리고 엄마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 같다는 죄책감에 견딜 수가 없습니다."
14일 낮 12시쯤 경북 포항시 남구 한 장례식장. 도를 넘는 성희롱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지난 10일 극단적 선택을 한 40대 여성 노동자 A씨(매일신문 14일 자 9면)의 빈소가 차려진 이곳에서 그의 딸들은 울음을 억지로 삼켜가며 입을 뗐다.
맏딸은 "(엄마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사흘 전 직장에서 성회롱을 당했다는 말을 했다. 그때 '그만두고 나와라'고 했지만, 엄마는 생계를 위해서 버텨보고 싶다고 했다"면서 "일을 그만두게 했더라면 하는 후회로 너무 힘들다. 내가 엄마를 죽음으로 내몬 것 같아 힘들다"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A씨는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크고 삶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그녀는 최근까지도 두 딸과 함께 모은 돈으로 다음달 여행 떠날 생각을 하며 들떠 지냈다. 그래서인지 A씨는 직장 상사들의 괴롭힘이 있었지만 가족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가족들의 증언과 A씨가 남긴 유서에 따르면, A씨는 지난 4월 말 포항 한 중소기업 화재감시원으로 채용됐다. 이후 현장 부장과 과장이 성적 수치심을 주는 말과 폭언을 일삼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업무에 익숙해지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가해자들은 여성의 몸으로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쇠파이프를 옮기게 하는 등 더 집요하게 괴롭혔다.
너무 힘들었던 A씨는 딸에게 조금씩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꺼냈고, 숨지기 사흘 전에는 성희롱을 당했다는 수치스러운 고백을 했다.
A씨는 지난 10일 오전 자신이 소속된 노조에 성희롱 사실을 알리는 등 마지막 몸부림을 쳤지만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이날 오후 자신의 집 식탁에 7장의 유서를 남긴 채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고, 다음날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A씨의 유서에는 "내가 이런 마음먹은 건 내 나이 50에 인간 이하 종(머슴) 취급당하면서 그 사람들은 아무 일 없듯이 지들이 한 짓은 생각 안 하고 뒤돌아서 제 욕을(하겠죠). 저런 인간들 때문에 죽을 이유는 없지만, 정말 비참하고 치욕스러워서 꼭 벌 받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참담한 심경이 담담한 어조로 담겨 있었다.
A씨는 또 "사랑하는 내 딸들 사랑해. 엄마가 살고 싶어서 현장에 나왔는데, 너무 치욕스럽고 무시당해서 진짜 난 안 살고 싶다. 내가 죽는 이유가 저 인간들 일지 상상도 못 했네"라며 유서에 마침표를 찍었다.
맏딸은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죽음을 택했을까, 그 시간을 생각하는 게 너무 고통스럽다. 아직도 엄마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민주노총 소속 전국플랜트건설노조 포항지부는 "A씨 제보를 받고 시정조치를 하려고 했지만 손쓸 틈도 없이 A씨가 숨졌다.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할 방침이며, 앞으로 현장에서 성희롱과 성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엄중 대처하겠다"고 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포항남부경찰서는 "유서에 적힌 내용을 토대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며 "의혹이 남지 않도록 수사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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