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시작하던 놈이 촛불을 켜고 밤을 새던 일과, 그놈들이 성과 힘을 다해 나의 신문에 충실하던 것을 생각할 때에 스스로 부끄러움을 견딜 길이 없었다…나라를 구원코자, 즉 나라를 남에게 먹히지 않겠다는 내가 나라를 한꺼번에 삼키고, 그러고도 또 깨물어 씹는 저 왜놈들처럼 일을 밤새워가며 해본 적이 그래 몇 번이나 있었던가?"
백범 김구(1876~1949)의 '백범일지'엔 밤낮 애국지사를 '때려잡는' 일제 경찰이 나온다. 위는 그들의 업무 충실(?)에 놀란 백범의 자책이다. 책에는 일본 장교를 없애 사형선고를 받고 탈옥한 김구가 1911년 일제가 날조한 데라우치 총독 암살음모 사건으로 또 잡혀 죽음 직전의 고문을 당한 수난 등이 등장한다.
경북대도서관에는 '백범일지'와 함께 김구 증언이 진실(?)임을 증명하는 '조선사상범검거실화집'도 있다. 제목과 검은 먹 글씨부터 묵직하다. 내용도 항일 지사 탄압에 나선 일인 경찰(14명)과 악명을 날린 한인 경찰(6명) 등의 성공담-일부 실패담-을 담은 수기라서, 애국지사의 수난 기록을 보노라면 가슴이 무너진다.
전국 4개 도(道)경찰부·17개 경찰서 경찰 20명 등의 비망록인 이 책에는 한인 사상범 검거 실화 30사례가 실렸다. 서울시공무원 경력의 지중세가 옮겨 엮었다. 1946년 8월 15일 발행된 책 서문 끝 부분이 1936년 6월로 돼 있어, 수기 역편은 일제 때 이뤄졌으나 발간은 광복 1주년에 이뤄진 것으로 짐작된다.
일경의 끈질긴 한국인 탄압 정열(?)은 끝이 없다. 김구 증언처럼 그들은 밤낮을 잊었다. 300쪽은 그 증언록이다. 지중세가 "일본인의 조선통치에 있어서의 성공은 경찰관의 공적이라고 하겠다…모든 책임은 일본인 경찰관과 그 부하로 맹종하던 조선인 경찰관들이 져야 할 것"이라 평한 까닭이고, 소름 끼칠 정도다.
'불휴불식(不休不息), 불면불휴(不眠不休) 활동, 철야(徹夜)하면서 추구(追求)하고 발각되지 아니하게 주야(晝夜)로 망보고, 주야불휴(晝夜不休)로 계속 신문(訊問)하며 한 잠도 자지 못하고, (경북)도내 1천600명 경찰관은 약기(躍起)하여 불면불휴의 수사를 계속, 질풍신뇌적(疾風迅雷的)으로 관계자 전부를 일망타진(一網打盡)하여 주야겸행(晝夜兼行)으로 취조(取調)에 종사(從事), 만 이주야(二晝夜)의 필사적 노력과 주야겸행 물샐 틈도 없는 수사망, 주야겸행으로 취조, 수일(數日) 동안 산수수사(山狩搜査), 동아일보사 편집국장 김준연(金俊淵) 등 유력 사회인 수사와 체포에 반대하는 서장과 상부에 사표를 내고….'
일경의 이런 열정에다 변화무쌍한 위장·변장술 등도 놀랍다. 걸인 차림으로 용의자 집에 숨었다 갑작스런 오줌 세례까지 견디며 지게꾼 등 온갖 차림으로 위장한 조원(組員)들과 잠복 끝에 작전에 성공한 간부 이야기 등 한국인 체포에 혈안이 된 한일(韓日) 두 민족 합작 경찰의 집요함과 끈질김이 무섭다.
한인 경찰 최석현은 더욱 그렇다. 그는 대구에서 1927년 10월 18일 터진 조선은행 폭탄사건 주인공 장진홍 검거를 위해 일본 절에서 빌었다. 그는 '수사 개시 이래 진범 체포까지 답파리수(踏破哩數)로 1만2천마일(哩) 답사(踏査)'를 자랑했다. 또 일본의 한국여성 밀정을 사고, 여아(女兒)까지 꾀어 장진홍을 잡을 만큼 교활했다.
반면, 애국지사의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활동과 비밀을 지키려 폭약을 삼켜 절명한 청년 등의 비극에는 절로 가슴이 저린다.
정인열 매일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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