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국민 의식 수준이 많이 높아졌음에도, 바뀌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접대부나 도우미를 찾는 술자리 풍속이다. 남녀의 성을 매개로 한 술 접대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로 자리 잡은 느낌이다.
대구경찰청이 지난 11일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집합금지 명령을 어기고 영업을 한 대구 달서구의 한 유흥주점을 단속해 현장에서 남녀 30명을 검거했다. 종업원이 4명이고 남성 손님 10명과 여성 접대부 16명이 포함돼 있다. 단속 당시 여성 접대부가 1명뿐인 점을 의심해 내부를 수색했는데, 계산대 뒤 비밀 공간(약 6.6㎡)에 여성 접대부 15명이 숨어 있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유흥업소 영업이 금지되자 숙박업소 객실을 유흥주점으로 활용한 업주 등이 적발됐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지난 14일 밤 역삼동의 한 모텔에 차려진 룸살롱에서 업주와 종업원 8명, 손님 33명 등 42명을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단속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주점은 모텔을 룸살롱으로 개조해 손님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남성 손님들이 내부에 앉아 있는 여성 종업원을 선택하는 '유리방' 시설도 있었다. 경찰은 모텔 객실로 이동하려면 반드시 주점을 거쳐야 하는 점을 반영, 성매매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다.
서울 서초경찰서도 지난 14일 밤 서초동 한 호텔 업주와 알선책 2명을 성매매알선 등 행위에 관한 법률(성매매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거했다. 이들은 객실 1개를 주점으로 불법 개조한 뒤 영업 안내 문자메시지 등을 보고 방문하는 남성들에게 술과 안주를 제공하며 여성 접대부와 성매매를 하도록 알선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들과 30대 여성 접객원, 호텔 종업원 2명 등 모두 6명을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해당 구청에 통보하기로 했다.
유흥주점의 접대부 영업과 성매매알선은 비단 대구나 서울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전국의 유흥시설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술자리를 옮기는 것을 금기시하는 사람의 생각인지 몰라도 은밀한 공간에 숨어 있는 접대부를 무더기로 찾아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변하지 않는 세태에 놀랐다.
1990년대 초반 사회부 기자 시절이다. 대구 남구 봉덕동 대구 가든호텔 주변은 '별들의 고향'으로 불렸다. 호스티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1974년 개봉 영화 '별들의 고향'에 영향을 받아 지어진 별칭이었다. 이곳의 유흥업소 단속 현장을 취재한 적이 있는데 입구 방화문 뒤에 숨겨진 밀실에 남성 손님과 여성 접대부가 무더기로 숨어 있었다. 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유흥업소가 단속을 피해 불법 영업을 하는 모습은 똑같다.
술 접대가 가져온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충격도 기억에 남는다. 대구와 일본의 농촌 지역을 서로 오고 가는 스포츠 교류 행사에서 일본 남성 손님들을 여성 접대부 있는 대구의 한 유흥주점에서 대접했는데, 방일 때 일본 측이 부인과 딸을 동원해 술 시중을 들게 했다. 인구가 많지 않고 여성 접대부를 둔 술집이 없는 일본의 농촌 마을 사람들은 대구에서 너무 대접을 잘 받아 그렇게라도 보답하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 2019년에는 경북 예천군의회 의원들이 해외연수 중 여성 접대부를 찾다가 가이드와의 마찰로 국제적 망신을 당하기도 했으며 국회의원이 외유 중 여성 접대부 있는 술집을 찾았다는 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
접대부가 시중을 드는 술 문화는 신분 차별이 있는 시대에 빚어진 일이다. 신분뿐만 아니라 성 평등이 이뤄진 현대 사회에서도 이런 일이 계속되는 건 '돈이 지배'하는 새로운 신분이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 돈벌이와 욕구 충족의 수단으로 성 평등에도 아랑곳없이 수요와 공급이 이뤄진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접대부를 찾는 풍속이 극소수의 일탈 행위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경제 활동을 촉진하는 로비 활동뿐만 아니라 연예인, 스포츠선수, 교육자, 언론인, 종교인 등 사실상 국민 일부가 접대부 문화를 당연시하고 있다. 그러기에 고관대작이나 장사치 가릴 것 없이 총체적으로 접대부 있는 유흥주점을 찾는 것이다. 우리보다 경제력이 못한 나라에 가서 여성 접대부를 둔 골프 라운딩을 자랑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런 버릇을 이기지 못하고 북미나 유럽의 선진국에 가서 접대부를 찾다 망신당하는 사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어쩌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된 접대부 문화는 뿌리 뽑지 못할 정도로 고착된 듯하다. 2차, 3차를 당연시한 술자리가 최근 단순하게 변하는 만큼 접대부를 매개로 한 술 문화도 좀 바뀔까.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