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강아지의 동그란 눈동자와 사람을 따르는 성격, 촐랑거리는 꼬리에 익숙해서 그런지 고양이의 날카로운 눈동자와 꼬리를 꼿꼿이 세운 자태는 여전히 무서워 보인다. 하지만 책방이 있는 동네가 오래된 주택가인데다 지척에 허름한 시장이 있어서 그런지 길고양이들이 유독 많다. 책방 안에서 거리를 보고 있노라면 과장을 좀 많이 보태서 사람 수만큼 고양이가 지나다니는 느낌이다.
고양이가 많다 해도 그들에게 큰 관심이 없다보니 그 놈이 그 놈 같던 어느 날, 하얀 털과 까만 털이 섞인 얼룩 고양이 한 마리가 책방 앞에 주차된 차 밑에서 쉬고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길고양이였지만 차 밑에 한참 누워있길래 찬찬히 보았더니 얼굴이 참 예쁘다. 작고 예쁜 얼굴에 마른 체구. 그런데 몸을 보니 새끼 낳은 지 얼마 안 되었는지 뱃살은 축 쳐지고 젖은 핑크빛으로 불어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고양이는 도망가지 않고 계속 그렇게 쉬고 있었다. 많이 지쳐보였다.
같은 엄마여서일까. 새끼들은 어디에 숨겨두고 나왔는지, 모두 건강한지, 어디서 무얼 먹고 다니는지, 모유는 잘 나오는지 등등 어미 고양이에게 감정이입이 되면서 그 고양이의 삶이 궁금했다. 사람이었다면 시장 가서 국밥이라도 한 그릇 사주고 싶었다. 아니면 시원한 커피라도 한 잔 주고 싶은데 책방에 고양이에게 줄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게 줄 것 없는 손이 멋쩍어서 그만, 내 인생 첫 고양이 사료를 주문하고 말았다. 사료가 도착하고 플라스틱 그릇에 사료를 채워 책방 앞에 두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어미 고양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와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 아이뿐만이 아니라 온 몸이 하얀 고양이, 꼬리가 엄청 긴 노란 고양이, 회색 고양이 등 다른 길고양이들도 와서 밥을 먹고 가는 것이었다. 다 비슷한 고양이인줄 알았는데 하나하나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고 밥을 먹는 고양이들의 뒷모습, 오독오독 사료를 씹어 먹는 소리, 다음날 출근하면 싹 비워진 밥그릇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새로운 감정의 세계였다. 밥이 수북이 담긴 밥그릇을 싹싹 긁어먹는 손자를 보는 할머니의 마음이 이럴까.
길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는 사람들을 '캣맘'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최근 언론에서도 심심치 않게 길고양이와 캣맘을 둘러싼 뉴스를 접할 수 있다. 안 그래도 책방 주변에 사시는 어르신들 역시 자꾸 고양이 밥을 주면 여기저기 똥만 싼다며 핀잔을 주는 분도 있는 반면, 밥그릇이 비었을 때는 캔으로 된 맛있는 특식과 사료를 넣어주고 가는 분도 있다.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지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원래 공존해야할 터전에서 독점을 주장하며 무참하게 먼저 균형을 깬 건 고양이가 아닐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독점의 도시에서 제 모습을 당당히 드러내며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동물이 고양이 아닐까. 고양이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어쩌다 마주친 고양이에게 어쩌다 사료를 주게 되었지만 밥 먹는 고양이의 뒷모습을 보면 늘 그런 생각이 든다. 너나 나나 산다는 건, 그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아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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