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리뷰 '루카'

영화
영화 '루카'의 한 장면

픽사의 '루카'(감독 엔리코 카사로사)는 사랑스럽고 따뜻한 애니메이션이다.

'인사이드 아웃'(2015)나 '소울'(2020)처럼 기발하지도, '코코'(2017)처럼 색다르지 않으면서도 정감 가는 이야기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동안 픽사 애니메이션이 집중하던 유니크한 비주얼보다 순수함과 유쾌함이라는 전통적인 미덕에 충실한 영화이다.

애니메이션이 가지고 있는 원형적인 진정성과 가치를 알게 해준다고 할까. 특히 코로나 팬데믹으로 떠날 수 없는 우리들에게 이국의 풍경을 한껏 전해주면서, 어릴 적 순수한 동심까지 자극한다.

'루카'는 바다 속에 살고 있는 종족의 소년이 뭍으로 나와 인간처럼 활동하면서 벌어지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화면은 이탈리아 해변의 하늘처럼 밝고 깨끗하며, 캐릭터들도 사랑스럽고, 서사 또한 솔직하고 맑다.

루카는 바다 속에서 사는 한 가족의 호기심 많은 아들이다. 해저에 가라앉은 시계나 카드 그림을 보며 물 밖 세계를 동경한다. 해변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바다괴물'이라고 부르며, 두려워한다.

영화
영화 '루카'의 한 장면

어느 날 루카는 알베르토를 만나면서 물 밖 세계를 경험한다. 둘은 바닷물 속에서는 '괴물'로 변하지만, 땅에서는 여느 아이들과 같은 모습이다. 둘은 인간 친구 줄리아를 만나 자전거대회에 출전하면서 용기와 우정을 깨닫는다.

모험과 용기, 우정과 가족애 등 많은 감정과 감성을 담고 있지만, '루카'는 용기와 포용이라는 두 가지 큰 주제를 다루고 있다.

알베르토는 겁이 많은 루카에게 두려울 때 마다 '실렌시오 브루노!'라고 외치라고 가르친다. 브루노는 내면의 겁쟁이고, '실렌치오(Silenzio)'는 '조용해!'라는 뜻이다. 자신감을 잃었을 때 자신을 다독이며 용기를 불어넣는 주문이다.

작은 섬에 있던 둘은 용기를 내어 마을로 들어가 인간들의 삶 속으로 뛰어든다. 행여 비라도 오거나, 분수에라도 빠진다면 '바다괴물'로 변할 위험도 있지만, 루카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이로움에 이를 마다하지 않는다.

영화
영화 '루카'의 한 장면

얼기설기 엮은 스쿠터로 하늘을 날고, 멸치떼인 줄 알았던 별도 만져본다. 감독은 이런 상상을 아이들의 눈높이로 보여준다.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은 자신이 어릴 적 꿈꾸던 것을 영화에 투영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경험을 어른의 시선으로 현란하게 미화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아이들의 생각처럼 묘사한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은 항상 위험을 수반한다.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루카'는 두려움에 선뜻 손 내밀지 못했고, 그래서 후회하는 어른들에게도 큰 공감을 던져준다.

또 하나 '루카'가 주는 것이 이 시대 가장 필요한 미덕인 포용이다. 루카는 바다괴물 종족이다. 오랜 세월 동안 마을사람들은 바다괴물을 증오한다. 그것은 루카의 바다 속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육지괴물은 늘 위협적인 종족이었다. 그래서 이 둘은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적이다.

그러나 루카의 엄마나 줄리아의 아빠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안전하게 울타리를 쳐주는 똑같은 존재들이다. 선입견이 만들어낸 증오가 문제인 것이다.

영화
영화 '루카'의 한 장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영화포스터 '심해의 공포'가 이를 잘 대변해준다. 루카를 찾아다닐 때 루카의 아빠가 이 포스터를 보고 "우고 형?"이라고 놀라는 장면이다. 우고는 심해에 살고 있는 루카의 큰아버지인데, 그 모습을 심해의 괴생명체처럼 그려놓은 것이다.

1980년대까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간과 다른 모든 생명체는 괴물이었다. 외계의 생명체나 바다 속 생명체도 모두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티(E.T.)'(1982)에 이르러서 그 두려움이 우정으로 승화된다. '루카'는 포스터가 등장하는 짧은 장면 속에서 이를 압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타인종에 대한 배려와 다른 문화에 대한 수용이 현재 지구촌의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이다. 특히 팬데믹을 거치면서 벌어지는 증오범죄는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루카'는 '다름'이 주는 낯섦을 수용하는 넓은 포용심을 강조하고 있다. 줄리아가 그런 강한 여주인공이고, 줄리아의 아빠나 루카의 할머니 등이 지혜로운 캐릭터들이다. 이런 거대한 주제를 큰 눈에 비늘이 예쁘게 반짝이는 '바다괴물'로 묘사한 것도 '루카'의 매력이다. 95분. 전체 관람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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