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칠성동 북부교회 인근 4개동의 옛 '피란민 수용소' 건물 등에는 19가구가 살고 있다. 폭이 1m 밖에 되지 않는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26명의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산다. 가로등이 없는 탓에 밤이면 골목이 깜깜하다. 현재는 수용소로 들어오는 골목에 폐쇄회로(CC)TV가 있어 절도사건이 줄었으나, 이전에는 좀도둑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고 한다.
◆전쟁 직후와 다를 바 없는 모습
주민들은 이 동네를 '섬'이라고 표현했다. 인근 주택에 사는 주민은 "중고 냉장고나 세탁기로 둘러싸인 섬 같은 곳이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피란민촌이 유독 푹 꺼져있다고 해서 '섬'이라고 표현한다"고 말했다. 경명여중 1학년 A(14) 양은 "밤이 되면 너무 어두워서 가능하면 이곳으로 안 오려고 한다"고 말했다.
여름 무더위와 겨울의 맹추위는 수용소 주민들의 삶을 더욱 힘겹게 하고 있다. 강풍이 불 때면 지붕이 들썩거리는 소리에 잠을 설친다. 장마철에는 누수가 심해 자다가 빗물세례를 맞기도 한다. 임시방편으로 방수포를 덮었다. 하지만 수년이 지난 현재는 방수포를 페인트로 덧칠한 탓에 비가 오면 페인트 섞인 빗물이 길가에 떨어져 인근 주민들의 볼멘소리도 나온다.
인근 주민 B(73) 씨는 "지붕을 개선한다는 말이 이전부터 있었는데, 기껏 해준 게 페인트 칠해서 덮는 것이었다. 비가 오면 페인트 물이 떨어져 동네가 더 더러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수용소 건물에 사는 주민의 집에는 쾨쾨한 냄새가 진동했다. 별도의 환기시설이 없어 벽은 곰팡이로 얼룩덜룩하고, 벽지는 군데군데 찢겨 있었다. 9.9㎡(3평) 남짓한 공간 탓에 주방시설도 없어 가스버너를 이용하거나 일회용 식품에 의존하고 있다.
개별 화장실을 갖는 건 주민들의 염원이다. 주민들은 사계절 내내 하나 뿐인 마을 공용화장실을 이용한다. 공용화장실은 성인이 제대로 앉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좁다. 변기에 똑바로 앉을 수 없어 옆으로 쪼그려 앉아 용변을 봐야 한다. 겨울에는 공용화장실에 물이 얼기 일쑤여서 주변에 다른 화장실을 찾아 헤매야 한다.
진입로도 문제다. 골목길 바닥 곳곳이 움푹 파여 고령의 주민들은 집을 나설 때마다 아찔함을 감수하고 있다. 어두운 새벽에 기도를 하고자 인근 교회로 가려 해도 발을 헛디딜 경우 크게 넘어질 수 있어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좁은 골목길에 하수구가 많아 인근 주민들은 수시로 살충제를 뿌리고 있다. 하수시설이 있지만 지반이 낮아 물이 제대로 흐르지 않고 정체돼 오물이 쌓이고, 벌레들이 모이는 것이다. 이날도 어김없이 살충제를 뿌리는 한 주민은 "이 골목에만 들어오면 하수구 근처로 벌레가 모인다. 뿌린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매일 뿌려야 속이 편하다"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집 아닌 집'에 사는 사람들
주민들의 삶은 처참하다. 가장 큰 불편함은 씻을 공간조차 없다는 점이다. 목욕비 6천원을 감당하기 힘들어 오랫동안 씻지 않고 지내기도 하는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변변한 직장조차 없거나, 불법체류자나 신용불량자인 경우가 많다. 현재 이곳 4개 동에는 19가구가 살고 있다. 거주자 26명 가운데 16명이 기초수급자 또는 차상위 계층이다.
대구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나온 C(61) 씨는 28년 동안 안정적인 직장에서 근무하며 두 남매와 아내와 함께 풍족한 가정을 일궜지만 친지에게 사기당해 한순간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노숙과 쉼터시설을 전전하다 피란민 수용소에 정착했다.
C씨는 "내가 평생을 일군 가정과 재산이 한순간에 풍비박산이 났다. 삶에 의욕을 잃고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달고 살았다. 친구도 많고 대인관계도 좋았는데, 남들이 알까봐 무서워 이곳에 숨어살다시피 하고 있다"고 했다.
시장 상인들과의 마찰도 비일비재하다. 피란민 수용소를 빙 둘러싼 가전제품들 때문에 진출입로 시야확보조차 어렵다는 게 주민들의 이야기다.
수용소 건물에 사는 D씨는 "도로를 점령한 가전제품들 때문에 손님을 맞이하기도 마땅찮다. 한참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해놓고 오는 데 수십분이 걸린 적도 있다"고 했다.
한 주민은 "상가 사람들이 마치 기득권처럼 인식하고, 오랜기간 자행해온 일인 것 같다. 굳이 싸울 일을 만들기 싫어서 그냥 두고 있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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