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 같은 뿌리 식물은 봄에 꽃을 피우고, 가을에 접어들면 뿌리가 더 이상 영양분을 소비하지 못하도록 뿌리를 캐서 서늘한 곳에 보관해서 살을 찌우고 이른 봄에 다시 땅에 심는다. 나는 일일이 캐내고 보관하기도 귀찮아서, 뿌리를 한꺼번에 한 곳에 묻었다가 봄에 다시 심었더니 꽃 크기는 작았지만 그 나름대로 실패도 없었다.
몇 년 전 봄에 튤립 꽃이 피기 전, 주위를 정리하다가 돌 밑에 눌린 튤립 알뿌리 하나를 발견했다. 다른 것은 키도 컸고 꽃을 피우기 위한 준비를 마치고 있었는데, 돌에 눌린 것은 키도 찌그러져 있었고 잎도 노랬다. 엄청 미안한 마음에 찌그러진 튤립을 햇빛이 가장 잘 드는 부드러운 흙에 옮기고 영양분을 넣었다. 그리고 매일 돌보기 시작했다. 옆에 잘 크고 있는 동료를 보면 미안한 마음은 더 심했다. 그러나 옆 친구들이 싱싱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도 돌 밑에 눌렸던 튤립은 결국 키도 안 자라고 꽃을 맺지도 못했다.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일란성 쌍생아도 자라나는 환경이 다르면 성격이나 몸의 상태가 달라진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튤립 경우를 봐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유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각자가 가진 체질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제까지 병의 70~80%는 타고난 유전자의 변이로 생긴다고 얘기했었다. 병이 생기면 자식에게 유전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고, 체질 때문에 병이 생겼으므로 체질을 바꾸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잘못된 정보에 속아서 비싼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들도 있다.
병에 걸린 사람들은 내가 왜 이런 병에 걸렸으며, 어떻게 해야 완치가 되는지 가장 궁금해한다. 나이 들어서 생기기도 하고, 유전자 변이로 생기기도 하지만 원인은 복합적이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치료 이후에 상태를 지켜보는 것이 최선이라고 얘기하지만 환자나 의사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하버드 의대에서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를 책으로 펴냈다. '노화의 종말'.
현존하는 최고의 노화 전문 의사가 지난 30년간 유전자 분석을 통해 해결책을 제시했다. 나이가 들어서, 유전자 변이가 생겨서, 어쩔 수 없이 병이 생긴다는 개념을 통째 바꾸는 이야기이다. 우리에게 생기는 병의 20%만이 원래 가진 유전자 이상으로 생기는 것이고, 80%는 살아가면서 생기는 유전자 변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전문적으로는 '후성 유전'이라고 한다. 당연히 해결책까지 제시했다. 의사로서 귀가 번쩍 뜨이는 이야기이다.
나이나 유전자도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건강한 유전자를 유지하고 손상된 유전자를 고치면서 건강을 유지하느냐인데 이에 대한 답이 나와 있다.
그럼 어떻게? 전체적으로 얘기하면 우리 몸을 조금은 부족하고 힘들게 해야 이런 유전자가 활동을 한다고 권고한다. 세부적으로는 소식을 하자. 16시간 간헐적 단식을 하자.(저녁을 일찍 먹고 아침까지 굶는 것이다) 운동을 하자.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서 뇌에도 휴식을 주자. 결국 알고 보니 오래전부터 우리가 알던 생활 습관들이다.
사람들은 흔히 병에 걸리면 제일 먼저 아이들에게 유전되느냐는 걱정을 많이 한다. 아니다. 유전자는 고정된 운명이 아니다. 유전자는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현재도 끊임없이 수선하면서 변한다. 부모의 생활 습관이 유전자를 건강하게 하고 아이들에게도 유전된다. 한 가족의 체형을 보면 대부분 비슷한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부모들의 건강한 생활 습관이 한 가족의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습관이 유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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