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21 매일 시니어문학상 대상作] 분이(2) - 김옥순(김아가다)

열여덟에 시집…삼대독자 알고나니 마음이 아득하고 조바심
천지신명이 아들 여섯 '분' 풀어줘…힘겨운 친정 삶 어매 기 살려준 셈

1964년 대구 봉덕동 집에서 찍은 사진. 사진 뒤편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큰딸, 남편 최명상 씨, 작은딸, 일곱째아들, 막내아들, 허분이 여사
1964년 대구 봉덕동 집에서 찍은 사진. 사진 뒤편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큰딸, 남편 최명상 씨, 작은딸, 일곱째아들, 막내아들, 허분이 여사

아들을 낳으면 끓여주려고 사다 놓은 북어를 아베는 다듬잇돌 위에다 놓고 팍팍 두드려 발기발기 째면서 욕을 했다. 아들도 하나 못 낳느니라고! 그놈의 아들이 뭣인지, 점잖던 아베 입에서 오만가지 흉한 말이 튀어나왔다. 북어 대가리까지 오도독 소리가 나도록 씹으면서 막걸리 한 주전자를 댓바람에 비운 아베는 대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밤이 지나고 날이 새도 아베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매는 퉁퉁 부은 몸으로 삽짝을 열고 고샅길로 나가 목이 빠지도록 아베를 기다렸제.

하루 이틀, 이제나저제나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꿈엔들 생각했으랴. 그대로 잠적할 것을. 며칠 있으니 고향 남산골이 휘딱 까뒤집어졌다. 동네가 난리 났니라. 우물가에서 떠드는 소리가 산모의 안방까지 들렸으니 얼마나 우세스러웠겠노. 어매는 죽고 싶었다더라. 까딱했으면 나도 어매도 이 세상 사람 아닐 수 있었다. 기가 막히제. 아베가 이웃 마을에 사는 아들 셋 낳은 여편네 손목을 잡고 멀리 달아났단다.

남의 집 행랑채에 곁방살이하던 그 집 여편네와 아베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징글징글하게 없이 살다가 돈을 보고 팔자 고쳐먹었는지 누가 알겠냐. 아베에게는 남한테 꿀리지 않을 만큼 재산이 좀 있었단다. 아베는 대를 이을 씨앗이 그렇게 소중했는가 보더라. 나한테는 두 살 많은 언니 연실이가 있다. 첫딸이라 이름이 참하다. 겨우 딸 둘인데 조금만 더 기다려주지 성질도 급한 기라. 내 이름은 저절로 이빨을 앙다물게 된다. 속상한 일이 생기면 내 이름을 불러본다. 분이! 그러면 웬만한 일은 다 잊어버리게 된다. 그것은 내 삶의 오기였다.

여자를 도둑맞은 여편네의 남자는 내 아베를 찾으려고 전국을 떠돌며 엿장수를 했다. 충청도 내륙 깊은 산골짝에 꼭꼭 숨어 사는 사람을 무슨 수로 찾아낼꼬. 그네는 전국 방방곡곡 삼 년을 찾아 헤매다가 파김치가 되어 고향 남산골로 돌아왔다. 술과 담배로 병이 든 남자는 얼마 못 살고 죽었단다. 그 집 아들 셋은 노모의 손에 커다가 뿔뿔이 남의 집 머슴으로 보내졌다고 하더라. 아들 못 낳아 소박데기가 된 어매 역시, 사람들 보기가 남세스러워 언니와 나를 데리고 살던 곳을 떠났다.

아베가 집과 전답의 문서를 다 들고 나갔으니 맨몸으로 돌아간 곳이 어매의 친정이었다. 딸년 둘 데리고 돌아온 친정이 뭐 그리 편했겠노. 남의 집 행랑채에 들어 품앗이하면서 근근이 목구멍에 풀칠만 하고 살았다. 먹고 살기가 힘든 어매는 열네 살 먹은 언니를 시집보낸 후 아홉 살짜리 나를 데리고 자식 없이 홀아비가 된 남자를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하늘이 무심하지 않았는지 재가한 어매는 내리 아들 둘을 낳아 한을 풀었다. 조그만 고추에서 오줌이 나오는 것이 참 신기하더라. 나는 너무 좋아서 그 남동생을 등에서 내려놓지를 않았다. 어매는 매일 들에 나가고 고추 달린 동생 둘을 내가 업어 키웠다. 내 나이 열여덟에 가마 타고 시집가는데 동생들이 문 앞까지 뒤따라와서 울고불고했다.

1961년 창경원에서 큰 딸, 막내아들과 함께. 사진 왼쪽이 허분이 여사
1961년 창경원에서 큰 딸, 막내아들과 함께. 사진 왼쪽이 허분이 여사

나는 내 이름값을 하고 사느라 이를 악물고 살았다. 경산 솔정고개 넘어 덕산동에서 대구 하동으로 시집왔다. 그때부터 택호가 '덕산 댁'이 되었지. 커다란 기와집에 부칠 논이 서너 마지기, 채소를 갈아먹을 밭떼기가 몇 마지기 있는 집이었다. 인물이 둥실한 보름달같이 생겨서 덕성스럽다는 소리를 사람들한테 많이 들었다. 그런데 신랑이 삼대독자라고 하니 아득하더라. 내 어매처럼 소박맞지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역시 나는 분이가 맞다. 천지신명이 내 분을 풀어주었는지, 용을 쓰지 않아도 아들을 술술 여섯이나 낳았다. 친정 어매가 얼마나 좋아하던지. 아들에 포원 진 어매한테 기를 살려 준 셈이다.

아베가 집을 나간 지 스물다섯 해가 되던 어느 날, 젊은 총각 둘이 찾아왔다. 어떻게 수소문해서 내가 사는 곳을 찾았는지 아연실색했다. '김해 허씨'며 동생이라고 했다. 온몸이 벌벌 떨렸다. 기가 막히고 분한 생각이 들어서 당신들을 모른다고 문전박대를 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얼굴 본 적 없는 아베가 먼발치에 서 있었지만, 대문을 닫아걸고 바닥에 퍼질러 앉아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아베고 뭐고 생각나는 대로 대놓고 욕을 퍼부었다. 내버릴 때는 언제고 무슨 낯짝으로 찾아왔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아베는 미웠지만, 핏줄이 무엇인지 훤칠하고 예의 바른 동생들이 궁금했다. 대문에 옹이 빠진 구멍으로 바깥을 살며시 내다보았다. 진짜 동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구나. 희한하제. 업어 키운 동생보다 핏줄이 같은 아베의 아들에게 마음이 자꾸 끌리더라. 그들은 사흘을 여관에 머물면서 우리 집에 매일 찾아왔다. 대문 바깥에서 아베가 용서를 청했다. 죽기 전에 동생을 인사시키려고 왔다는 소리에 내 마음이 무너졌니라.

고집을 부리며 버티지만, 관솔 구멍으로 바깥을 훔쳐보는 내 마음을 눈치 챘는지 신랑이 대문을 활짝 열었다. 희한하더라. 내 아베를 안방으로 모시고 절을 넙죽 하는 신랑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맞는가 보더라. 어매가 낳아준 동생은 사랑과 보살핌으로 키웠고, 아베가 낳은 동생은 생면부지였는데 자꾸 그 동생들에게 정이 쏠리더구나. 신랑은 삼대독자다. 친척이 없다가 진짜 장인과 처남 둘이 새로 생겼다고 억수로 좋아했다. 핏덩이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떠난 아베가 조상님 볼 면목이 생겼다면서 뻔뻔스럽게 눈물을 흘렸다. 나도 자식을 낳아보니 그 마음 이해가 가더라. 좀 복잡하지만, 아베와 어매가 낳은 남동생이 넷이나 된다. 잘 알아 들었제. 아가, 여기까지가 차렵이불 속사정이다.

백 년 전 어머님이 태어난 시절은 남아선호사상이 유별난 시대가 아니었던가. 오로지 대를 잇겠다는 염원으로 조강지처를 버린 아베의 양심도 고달팠으리라. 그리하여 열매를 얻은 그 씨앗은 또 씨를 뿌리고 지구가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씨를 남길 것이다.

2003년 큰아들 내외와 아산 온천에서. 사진 가운데가 허분이 여사
2003년 큰아들 내외와 아산 온천에서. 사진 가운데가 허분이 여사

아가, 또 한 가지 말할 게 있단다. 분하다. 부끄럽지만, 내가 낳은 자식 여덟에 들여온 피붙이 하나 보태서 내 밑으로 모두 아홉 자식이 있다. 부산에 사는 시누이 말이다. 왜정시대 때 종로에서 빠찡꼬를 할 때였다. 셋째를 낳고 가게에 못 나가게 되어 사람을 하나 두었단다. 청소도 하고 계산도 하라고 들어온 처녀가 네 시아버지와 배가 맞았다. 한 치도 의심 없이 지냈는데 주위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자꾸 내 귀에 들렸다. 사람들이 귀띔을 해줘도 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 믿지를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입성이 초라한 여자가 찾아왔다. 안방으로 들어온 여자가 대뜸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처녀의 모친이었다. 딸이 이 댁의 핏줄을 낳았는데 산바라지 할 돈이 없어서 찾아왔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억장이 무너지더라. 당장 나가라고 소리 지르며 쫓아냈다.

괘씸하고 분했지만,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니 마음이 흔들렸다. 모친을 보니 막되어 먹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 여자의 집을 수소문해서 산모가 먹을 미역과 쇠고기 그리고 쌀 세 가마니를 소달구지에 싣고 찾아갔다. 찌그러진 움막에 모녀가 살고 있더라. 산바라지가 시원찮아서인지 누렇게 뜬 얼굴을 한 젊은 년이 아이를 안고 있었다. 그래도 염치가 있었던지 내 앞에 다소곳이 큰절을 하더구나. 두 집 살림을 차릴까 덜컥 겁이 나더라. 자식들이 올망졸망 자라고 있는데 이 일을 어찌할까, 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태연한척했다.

"너나 나나 팔자가 사나워서 인연이 이렇게 되었구나, 어서 몸이나 추슬러라."

그 말만 하고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 영감한테 한 마디도 추궁하지 않았다. 그때는 웬만큼 돈 있는 남자들은 첩실 하나쯤은 두고 사는 시절이었다. 더 험한 꼴 보지 않으려면 참아야 했다. 아예 대놓고 살림을 차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이 지난 뒤 젊은 년의 모친이 강보에 싸인 아이를 안고 찾아왔다. 야단을 치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줄 알았는데 점잖게 돌아왔으니 미안했던 모양이다. 어찌나 가슴을 치면서 울던지 나도 같이 울었다. 나도 자식 키우는 어미이니 말하지 않아도 그네의 심정을 이해하겠더라.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해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다시는 얼쩡거리지 않겠다고 했다. 부잣집 겨드랑에 붙어 팔자 좀 고쳐보려고 하다가 제풀에 꺾인 게지. 젊은 년의 모친은 딸을 다른 데로 시집보내겠다고 손바닥을 비비면서 약속했다. 인생이 불쌍하더라. 그래서 돈을 좀 마련해서 건네주었다.

〈2021 매일시니어문학상 대상작 논픽션 '분이' 3편은 다음주 목요일(22일)에 게재합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