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 엘리베이터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신문물'이었다. 당시 대구에서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은 대구백화점 본점과 계명대 동산병원 두 곳 정도였다. 특히 대백은 대구경북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일부러 찾아가던 장소였다. 어린 시절 대백 본점에서 엘리베이터를 처음 타 본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 중력을 거슬러 오르내릴 때 가슴이 내려앉는 듯한 느낌….
대구경북민들에게 대백 본점은 마음속 이정표와도 같은 곳이었다. 시내에 약속을 정할 때면 사람들은 으레 "대백에서 만나자"고 했다. 대백 본점 전 층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지갑이 얇아 쇼핑을 못 하더라도 다양한 상품들을 눈으로 보면서 욕망을 달랬다. 지역민들에게 대백은 물건을 사는 곳 이상의 공간이었다.
대백은 1944년 고 구본흥 창업주에 의해 대구 종로 옛 동인호텔 일원에 설립된 대구상회를 모태로 한다. 1969년 지금 본점 자리에 10층짜리 대형 백화점으로 문을 열었다. 1970, 80년대 동성로에 사람이 꽉꽉 들어차던 시절 그 중심 자리에 대백이 있었다. 대백은 1979년 지방 백화점 처음으로 신용판매 제도를 도입했고 1984년에는 유통업계 최초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대백 본점이 이달 30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영업을 잠정 중단한다고 하는데 지역에서는 사실상 폐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크고 작은 시련 속에서도 52년을 굳건히 버텨 왔던 대백 본점이지만 신세계·현대·롯데 등 백화점 '빅3'의 대구 각축과 온라인 쇼핑 시대 흐름을 이겨 내지는 못했다. 대면 소비 직격탄이 된 코로나19도 한몫 거들었다.
크고 화려한 것, 명품과 브랜드를 소비하는 시대다. 그 거대한 조류 속에서 애향심 마케팅은 점차 기댈 곳을 잃어 가고 있다. 전국을 호령하던 청구·우방·보성 등 지역의 명가 주택건설사들이 외환위기 때 문을 닫거나 주인이 바뀌었다. 2010년에는 동아쇼핑이 이랜드그룹에 넘어갔다. 이제 대백 본점의 영업 중단으로 '대월동화'(대백은 월요일 휴무, 동백은 화요일 휴무)라는 대구 사람들만의 은어(?)도 기억 저편에 묻힐 것 같다. 시대적 흐름과 세월이 참 무상하다. 대백 프라자점이라도 오래오래 지역민들과 함께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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