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프로야구 선수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서 응원하는 모습은 어색했고 거의 없었다. 응원하는 구단의 모자를 쓰는 것을 부끄러워하던 시절이다. 메이저리그 구단의 모자나 점퍼를 입는 것은 그래도 좀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1994년 '코리안 특급'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진출로 그의 소속팀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는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다. 그해 6월 미국 월드컵을 취재하면서 머문 보스턴의 숙소가 보스턴 레드삭스 홈구장인 펜웨이파크와 아주 가까웠다. 이곳에는 미국 전역의 프로야구단 유니폼 판매장이 있었고, 사회인야구를 함께 하던 지인 선물용으로 다저스 점퍼를 구매했다. 영문 Dodgers가 크게 새겨진 점퍼는 방한용으로 박찬호의 인기와 더불어 입은 사람을 돋보이게 했다.
국내 프로야구가 40년 역사를 자랑하면서 좋아하는 팀의 선수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는 것은 이제 일반화된 풍경이다. 경기장 관람석은 선수들의 유니폼 진열장으로 변했다. 선수들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수집하는 팬들도 많다.
그런데 프로야구가 도시 연고지를 채택하고 있음에도 도시 이름을 새긴 유니폼은 많지 않은 편이다. 프로야구가 성행하는 미국과 일본, 한국을 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실정이다.
메이저리그 경우 LA 다저스, 뉴욕 양키스처럼 팀 명칭에 도시 이름을 포함하고 있지만, 유니폼 앞면에 도시 이름보다 다저스, 양키스 등 구단을 상징하는 애칭이나 구단 명칭을 형상화한 LA, NY 등의 로고를 주로 담고 있다. 일본프로야구는 구단 명칭과 애칭을 각각 표기한 두 가지 유니폼을 사용하고 있다. 한신 타이거즈는 HANSHIN과 Tigers를, 히로시마 카프는 도시 이름을 담은 Hiroshima와 Carp를,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연고 도시 TOKYO와 GIANTS를 각각 유니폼에 새기고 있다.
국내 프로야구는 모기업인 대기업 중심으로 작명을 했고, 유니폼에 애칭과 모기업 이름을 담고 있다. 1982년 출범 때부터 연고 도시 이름을 넣지 않았는데 수년 전부터 몇 구단이 연고지 유니폼을 선보이고 있다. LG 트윈스는 SEOUL을, 롯데 자이언츠는 BUSAN을 새긴 유니폼을 제작했다. KT 위즈는 수원 화성을 축조한 정조 임금을 상징하는 용포 이미지 속에 SUWON을 새겼다. SSG 랜더스에 인수된 SK 와이번스 선수들은 지난해 연고지 INCHEON을 새긴 유니폼을 수시로 입었다. SSG는 올해 시범경기 때 인천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올해 연고지 유니폼이 유행하고 있다. 일부 구단이 연고 도시 이름이나 도시 상징 로고 등을 새긴 유니폼을 경기장에서 입고 뛰면서 팬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보스턴 레드삭스, 마이애미 말린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시카고 컵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뉴욕 양키스 등이 연고지 유니폼을 공개한 상태다.
연고지 유니폼은 메이저리그 온라인숍에서 주로 판매되고 있다. ESPN에 따르면 연고지 유니폼은 전통적인 팬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하지만, 공개 직후 빠르게 매진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시카고 도심 남부를 기반으로 한 화이트삭스는 Southside를 크게 새긴 연고지 유니폼을 선보였는데, 홈구장 판매소에서 3시간 만에 매진됐다고 한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전통의 빨간색과 흰색 대신 노란색과 하늘색 유니폼을 제작, 판매하고 있다.
연고지 유니폼은 팬들의 충성도를 높이고 구단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처럼 국내에서도 연고지 유니폼이 본격적으로 등장할까.
국내 프로야구단은 연고지가 있음에도 지방 구단은 예전 전국구를 지향하며 서울 진입을 꾀했다. 유니폼에 연고 도시의 이름을 넣는 것도 부정적이었다. 삼성 라이온즈만 하더라도 유니폼에 대구를 새기는 데 인색했다. 한때 어깨에 대구를 새긴 유니폼을 사용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 자리에 광고업체를 담고 있다. 유니폼 앞면에 대구를 새기자고 삼성 관계자와 얘기한 적이 있는데, 대구 연고라는 것을 모두 아는데 도시 이름을 새길 필요가 있겠느냐는 대답을 들었다.
국내 프로야구단이 모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에서 벗어나 마케팅으로 자립기반을 닦고 있는 만큼 도시 이름을 새긴 유니폼에도 관심을 둘 때다. 지자체에 새 야구장 건설 등 협조만 요청할 것이 아니라 도시 홍보에도 앞장서야 할 것이다. 구단이 머뭇거리면 지역 야구팬이나 지방의회 등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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