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까지만 해도 '상기하자 6·25 때려잡자 공산당'이란 구호는 흔했다. 그런데 지금 그런 구호는 찾아보기 어렵다. 6·25는 이렇게 우리 시야에서 서서히 사라져 갔다.
미국에서도 6·25는 '잊힌 전쟁'(Forgotten War)으로 불린다. 미국은 6·25에 연인원 178만9천 명을 참전시켰다. 이 중 3만3천686명이 전사하고 9만2천134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8천167명이 실종되거나 포로가 됐다. 2차대전이나 월남전보다는 못하지만, 짧은 전쟁 기간에 비춰 보면 어마어마한 희생이다. 그런데도 미국에서 6·25가 '잊힌 전쟁'이 된 것은 6·25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판단 기준을 갖지 못했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6·25는 승패가 불분명한 상태로 종결됐다. 미국의 젊은이들이 왜 이름조차 생소한 극동의 먼 나라까지 와서 피를 흘려야 했는지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월남전 참전 용사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사회적 관심을 받았지만, 6·25 참전 용사들은 그런 관심의 대상도 되지 못했다.
미국의 6·25 참전 용사들은 자신들의 희생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한 채 비극적인 생활을 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한국에 대한 관심을 끊고 참전 사실 자체를 말하지 않기 때문에 자식이나 손자들이 그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미국의 참전 용사들이 극적인 변화를 하는 계기가 있다.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경험이 그것이다. 이들은 한국이 눈부시게 발전한 것을 보고 '이 나라를 목숨 바쳐 지켜 낸 보람이 있다'며 감격하곤 한다.
참전 용사 가족들이 그들의 할아버지나 아버지들을 새삼 존경의 눈초리로 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어떤 참전 용사는 수십 년간 전쟁의 악몽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생활하다 한국을 방문한 뒤 증세가 급격히 호전돼 담당 의사가 놀랐다는 보고도 있다. 미국 참전 용사들의 이런 경험은 우리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6·25가 재조명·재평가되어야 할 이유를 보여준다.
대한민국은 6·25의 결과물이다. 그런 점에서 6·25는 '건국 전쟁'이다. 갓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를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지켜내기도 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국민의 탄생'(Birth of Nation)이라는 결과이다.
대지주 계급이 소멸해 자영농으로 대체됐으며, 월남민 자본가들이 전쟁의 참화를 덜 받은 영남 지역 자본가들과 결합해 개발연대의 주역을 형성했다. 피난민들이 새로운 지역에 정착하면서 유교적 신분제는 근거를 상실했다. 미국 참전 용사들이 목격하고 감동하는 한국의 현재가 그 결과를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6·25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포기하고 사건 발생 시점만 기억하는, 탈(脫)역사화된 명명을 고수해 왔다. 이는 우리 우파의 정치적 무능력·무책임의 소산이다. 북한이 6·25를 조국해방전쟁으로, 중국이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 즉 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도운 전쟁이라고 명명해 자신들의 역사적 평가를 반영한 것과 대조적이다.
건국은 미완의 과제이자 현재진행형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6·25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6·25가 공식적으로 종전이 아닌 정전 상태라는 것도 이런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북한 김씨 조선 체제가 소멸해 대한민국 체제로 통일될 때 비로소 이 전쟁은 끝난다.
6·25는 한반도 근대화를 둘러싼 두 개의 노선이 대립 충돌한 현상이다. 분단은 그 대립이 해결되지 못한 결과였다. 이후 남북한의 체제 대결은 어느 쪽 근대화가 옳았는지 입증하는 경쟁이었다. 그 경쟁의 승패는 분명히 가려졌다. 하지만 북한 체제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그 진실이 전면화되는 순간 그들은 역사의 폐기물이 되기 때문이다.
역사 전쟁은 체제 경쟁에서 패배한 친북 좌파의 반격 수단이었다. 그들은 특유의 정치 투쟁 능력을 활용,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우파들이 이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남북 체제 경쟁의 열매를 고스란히 친북 세력에게 헌납하게 된다. 건국 전쟁 6·25의 의미를 재평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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