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움직이는 전자제품 시대 협업

김현덕 경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김현덕 교수
김현덕 교수

최근 자동차용 반도체 부족 현상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이 현상은 장기화되는 모습이다. 세계 주요 제조사들이 자동차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반도체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나, 여전히 해결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와 비슷한 상태가 길게는 1년 이상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업계에서 흘러나온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 정부들이 기업을 대신해 반도체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나서고 있고, 미국은 대통령까지 나서서 자동차용 반도체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유다.

자동차용 반도체 부족 현상은 여러 요인이 결합된 것이지만 분명한 것은 차량용 반도체의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동차의 전자화는 꾸준히 진행돼 왔다. 자동차의 원가 비중에서 전자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1980년에는 1%를 넘지 않았으나, 지금은 40% 수준에 육박하고, 전기자동차는 70%에 이를 정도로 전자부품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되었다.

자동차의 전자화가 진행되면서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늘어났는데, 예를 들어 차종별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자동차 한 대당 계산과 제어를 담당하는 마이크로컨트롤러(MCU)는 최소 50개가 넘게 사용되고, 많을 경우 200개 넘게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연간 전 세계 자동차용 마이크로컨트롤러 사용량은 100억 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쯤 되면 자동차가 아니라 움직이는 전자제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크로컨트롤러를 비롯한 전자부품이 점점 더 많이 사용되는 자동차의 전자화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최근 도입된 '전기자동차 전용 플랫폼'이다. '전기자동차 전용 플랫폼'은 자동차에 사용되는 여러 부품을 결합한 반제품형 차체 틀인데, 단순히 모터, 배터리, 감속기 등을 기구적으로 통합한 것이 아니라 훨씬 높은 수준의 소프트웨어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해 통합한 것이다.

미국의 테슬라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가장 먼저 도입했으며, 독일의 폭스바겐, 우리나라의 현대자동차 등도 최근 전용 플랫폼을 기반으로 전기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 자동차의 주요 기능 부위를 모두 포함하고 있기에 향후 전기자동차 기술 경쟁은 이러한 플랫폼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자동차의 전자화가 진행될수록 플랫폼 형태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도 짚어야 할 부분이다. 예를 들어 200개의 개별 마이크로컨트롤러를 사용하는 경우에 비해 한두 개의 성능 좋은 중앙처리장치를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자동차 전용 플랫폼은 본질적으로 부품 공급 사슬(supply chain)을 결정하기에 부품 기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기업들이 하나의 부품에 마이크로컨트롤러를 사용하고, 각 마이크로컨트롤러마다 펌웨어라 불리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납품하는 방식으로 일을 해 왔다면 현재의 테슬라와 같이 중앙처리장치에 기반을 두고 플랫폼을 구현하는 경우에는 펌웨어가 테슬라 소프트웨어의 일부로서 포함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자동차 부품 기업의 제품 개발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하드웨어를 만들고 소프트웨어를 적절히 외주 개발해 납품할 수 있었다면 새로운 플랫폼 방식에서는 지속적으로 완성차 업체와 협력할 내부 역량 확보가 필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역량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공급 사슬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구경북에는 자동차 분야에서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전통적인 기업들이 많다. 하지만 회사 자체적으로 ICT 분야의 역량을 확보한 기업이 적을 뿐만 아니라 새롭게 확보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서로 다른 분야 기업 간 협업이 절실히 필요하다. ICT 기업과 자동차 기업의 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움직이는 전자제품으로 변신하고 있는 자동차 산업을 주도할 역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 간 협업을 촉진할 수 있게 하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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